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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증권가 휩쓰는 서강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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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7-16 11:07 조회19,3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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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한국투자증권 리서치 박혁수 위원/신동준 연구원 2003/07/12(매경이코노미) 한국투자증권에 경사가 났다. 매경 베스트 애널리스트 조사에서 처음으로 사상 2위권에 진입한 섹터가 생겼기 때문이다. 픽스트인컴 분야다. 매경은 아직 크레딧 부분이 제대로 성숙되지 못해 사람이 아닌 팀으로 평가한다. 지금까지 픽스트인컴의 보고서가 굿모닝신한과 삼성이 주도하는 ‘스트래터지’ 개념의 접근이 있었다면 한투증권의 등장으로 ‘데일리 스트래터지’ 개념이 도입됐다. 즉 굿모닝신한의 보고서가 전체적인 흐름을 중시하고 재료를 바탕으로 분석해 계도 기능까지 한다면 한투증권의 보고서는 주간과 월간보고서를 중심으로 ‘단기적인 매매전략’에 관해서만 다룬다. 증권으로 따지면 ‘데일리’를 쓴다고 보면 된다. 한투에서 픽스트인컴을 담당하는 사람은 박혁수 (194 경제)위원과 신동준(90. 정외) 연구원이다. 두 사람이 만든 2위는 의미가 크다. 본래 픽스트인컴 보고서는 신동준 연구원이 2001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박 위원은 지난해 7월부터 가세해 1년 정도 됐다. 불과 2년반 만에 2위권에 오른 노하우는 뭘까. 바로 한투증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점도 작용했다. 처음 픽스트인컴 보고서를 쓰게 된 신동준 연구원은 용어나 흐름을 모르면 무조건 운용 쪽 펀드매니저에게 찾아가 야단맞으며 배웠다. 또한 이미 베스트로 이름이 알려진 굿모닝신한의 윤영환, 김일구씨나 삼성의 장영규 팀장이 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최고의 스승들한테서 보고 배우게 된 셈이다. 신 연구원은 채권 공부가 재미있었다. 공부하다 막히면 물어보고 물어보면 해답을 얻으며 1년 정도가 흐르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이도윤 자산운용팀장과 정원석 채권운용 본부장이 있고 회사를 옮긴 펀드매니저만 해도 신영투신의 안재영 팀장, 동원투신의 황보영옥 팀장, 신한BNP의 유석렬 팀장 등이 있다. 지난해 7월 박혁수 위원이 합류하면서 한투증권 보고서는 더욱 정교해졌다. 마침 와서 처음 얼굴을 본 신동준씨의 서강대 대학원 선배이기도 해 호흡도 잘 맞았다. 올 초 이들은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연초에는 콜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보았으나 경기지표를 보고 바로 ‘금리인하’로 바꿨다. 채권을 계속 사라는 얘기였고 결국 들어맞았다. ■투신증권사상 최고 성적■ 콜금리 인하 시기도 5월쯤으로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 맞췄다. 이들은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4월경 수정수치를 발표하는 걸 보고 뭔가 수상하다고 판단, 금리인하한다고 전망했고 결국 맞았다. 통상 수정 전망치는 상·하반기에 2번 정도 낸다. 그러나 중간에 낸다는 건 뭔가 이상한 것이라는 얘기다. 또다른 자랑거리는 국고채 3년물 기준으로 금리가 3%대까지 빠진다고 예측한 점이다. 한투증권 픽스트인컴팀은 공식적인 팀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6개월간 한발 앞서서 매수와 매도를 코멘트했고 결국 성공해 신뢰를 얻는데 성공 했다. 박혁수 연구위원은 성균관대를 나와 서강대 대학원 경제학부(194 경제)를 나왔다. 95년 당시 최강이던 한화증권 채권팀에서 ‘본드브리프’를 만드는 일을 하다 2000년 FN가이드로 옮겼고 지난해 여름 다시 한투증권에 합류했다. 신동준 연구원은 서강대 정치학과(90.정외)와 서강대 대학원(197 경제)을 나왔다. 2000년 입사해 10개월 정도 지점에 있다가 2001년 초부터 ‘미답의 길’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호흡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Cover Story] 이코노미스트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실장 검정고시 출신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첫 배출됐다. 조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코노미스트 베스트에 오른 김영익(182 경제) 대신경제연구소 실장은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고등학교까지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집에서 농사 일을 도우면서 말 그대로 주경야독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함평의 한 시골에서 훈장을 했던 피는 어디 가지 못했다. 그는 3살이나 늦게 함평농고에 들어갔지만 1년 반만 다니고 검정고시를 택했다. 이후 그가 선택한 곳은 전남대 경제학과. 79년도이었으니 58년생인 그로서는 2년여 늦은 셈이다. 대학은 3년 반만에 졸업했다. 이젠 동기들과 1년반의 격차 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학원은 서울 서강대(182 경제)였다. 그런데 석사과정을 단축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6개 월 긴 2년반이나 다녔다. 이유가 있다. 6개월이면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석사장교’를 꿈꾸고 있었는데 병무청 창구직원이 ‘여름학기 졸업자는 시험응시 대상자가 아니니 6개월 뒤 다시 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일부러 공부를 느리게 해 6개월 뒤 갔더니 ‘석사장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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