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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에도 의대.한의대가 있어요? 의사.약사81명, 한의사 28명 현직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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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3-02 12:07 조회17,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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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출신 의료인? 서강출신 한의사, 소아과, 수의사. . .등에 대해 들어 보셨는지? 이 질문에서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서강에는 의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강 졸업 후 의대, 한의대에 편입 또는 재입학해서 의료 전문가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의사, 수의사, 한의사, 약사 등을 포함해 대략 109명에 이르고, 현재 편입해서 공부하고 있는 이들까지 고려한다면 그 숫자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중에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제적됐던 동문들이 의료인이 되는 경우 등 저마다 사연도 남다르다. 어찌 보면 서강답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의료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서강 의료인으로서의 마음가짐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 가운데 한의사 동문중 최고참인 박석준 대구한의대 사상의학과 교수와 정재훈 내과소아과병원 원장을 만나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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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88.경제) 정재훈 내과소아과의원 원장 


1987년 겨울 선지원 후시험이던 당시의 입시제도로 인해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서강언덕을 오른 게 손에 잡힐 듯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작고 아담한 캠퍼스, 깨끗한 이미지가 저를 서강으로 이끈 듯합니다. 청년광장을 떠난지도 벌써 10여년이 흘렀습니다. 대부분의 동기들은 금융기관이나 기업체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었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졸업 후 당시의 추세대로 금융기관에 잠시 근무를 하였으나, 학창시절부전공인 심리학을 통해 배운 사람의 행동과 그 배경을 이루는 정신세계에 매료되어 정신과의사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저를 다른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 생각은 의대에서 정신과를 배운 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곧 저는 직장을 접고, 의과대학에편입이 아닌 신입생으로 입학을 하였습니다.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어 입시를 치른 탓에 자연계 수학이 문제될 줄 알았으나 서강에서 배운 대학수학과 경제수학 덕분에 쉽게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나이 어린 선배들과 군기(?) 센 의대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저런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았으나, 경제학도로서 바라보는 의학분야는 다른 의대생들과는다른 경험을 제게 주었습니다. 사회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그 사회는 이상적으로 운영됩니다. 현대사회는 복잡한 조직 구조만큼이나 다양한 직업이 존재합니다. 그 속에서 전문가로 남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만 정통하고 다른쪽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라면 진정한 전문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 의대에서 의학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경제학도로서의 지식, 은행원으로 겪었던 사회경험 등이 큰 도움이 되었으며, 타 의대생들보다 현상에 대한 이해가 빨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4년 동안 타학문을 공부하고 전문대학원체제로 의사양성제도가 바뀌는데 찬성합니다. 서강대에 다니는 후배들 중 의대에 진학코자 하는 분이 있다면, 일단 지금 하고 있는 학업을 마무리하고 그 분야에 대해 자신이 있을 때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한 분야가 안되어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서면, 새로운 길에서의 성공도 보장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현재의 학업,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인정을 받을 때 다른 분야로의 도전이 성공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서강인들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출하기를 바랍니다.

 

제 기억에 서강대는 신입생 때부터 받게 되는 철저한 학사관리를 통해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대학 생활에 항상 긴장감을 갖게 했고, 그로 인해 서강 졸업생들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대학이라는 곳이 타의에 의해 공부하는 곳은 아니지만 항상 학업을 추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을 계속 살려 모교가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자기 계발에 힘쓸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면, 후배들도 졸업후 각 분야에서 보다 입지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로서 내 후배, 내 학교의 자랑스런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계속 접할 수 있다면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배가가 될 것입니다.

대학병원에서의 수련과 짧은 페이닥터 생활을 한 후 개원을 결심했습니다. 많은걱정과 회의로 시작된 개업의 생활도 어느덧 1년이 지나고 이제는 의사 4명과 간호사 5명이 있는 지역에서 꽤 자리잡은 병원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스스럼없이 제 인생의 첫사랑이 서강이었다고 말합니다. 18 년 동안 계속된 저의 첫사랑이 서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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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78.경제) 대구한의대학교 사상의학과 교수

시대의 어둠이라는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78학번으로 입학해서 1983년 8월 경제학과를 졸업하기까지 무려 13학기를 한 학기도 빼놓지 않고 등록을 했던 나로서, 서강대 출신 의료인을 대표해서 글을 써달라는 청을 받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늘 변두리에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경제학 개론 첫 강의가 내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교수님은 아마도 우리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되는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은 30만원 짜리(대기업 대졸 초임)다. 이 수준이면 서울대 출신과 같다."

사실 별 생각 없이 대학에 들어온 처지였지만, 사람을 경제적 가치로 따지는 그 분의 말씀은 반대로 나에게 경제 이외의 다른 가치를 찾게 했다.

이후로 순전히 점심 먹을 장소를 찾기 위해 친구 따라 들어갔던 민속문화연구회(탈반) 활동을하면서 나는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당시전통문화에 대한 접근은 새마을운동과 같이 전근대적인 가치를 부정하면서 파괴하고 있던 권력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기도 했지만 이때의 경험은 이후 감성과 이론, 그리고 실천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

졸업 이후 다양한 사회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나는, 원래 가업을 이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형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한의대로 가게 됐다. 그러나 막상 들어간 한의대는 매우 낯선 곳이었다. 비록집안에서 늘 한의원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고 서강대에서는 전통문화를 몸으로 체득한 상태였지만 철저히 근대 서양학문에 길들여졌던 나로서는 음양오행을 비롯한 한의학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버릇 남 못 준다고 서강대 다니며 한때 1주일에 10개씩 세미나를 하기도 했던 경험을 되살려 동양과학사상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후배들과 다시 세미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임은 현재 ‘동의과학연구소’ 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의대에 들어가고 나서 얼마쯤 지나니 서강대 후배들, 그것도 소위 운동권 출신이 한의대로 가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이들이 한의학을 선호하는 경향은 아마도 운동이 갖고 있는 생태학적 관점과 서양의 근대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의사로서의 경제적인 지위 역시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지만. 무엇보다 매우 보수적인 한의학계에 새로운 관점과 삶의 양식을 도입할 수 있는 계기라는 점에서 나는 이런 흐름이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이들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에 의해 한의대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이들이 졸업해서 사회에서도 다양한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 화학제품이 90% 이상을 차지하던 의약품 시장이 최근에는 천연 한약재가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한의학은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3년을 기점으로 소위 정통의학(과학적 의학)에 지불되는 의료비보다 한의학을 포함한 대체의학에 지불되는 비용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런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화 나아가 세계화에 대한 문제 제기일 수 있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경제적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직도 서양의 근대과학 근본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점점 가속될 것이며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한의학이 있다. 비록 한의대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고 하지만 한의학의 길에 후배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모교에 바라는 바는 지금까지의 전통에 동서고금의 문화를 융합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이 더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단순히 자신의 신앙을 전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보다 먼저 중국을 알기 위해 노력했던 전통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기는 모교에 한의대가 생기는 것이다. 아니면 부설한방병원을 갖는 대학원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시범적으로 한의학 개론이나 입문 같은 강의를 개설해보는것도 한 방법이다.

오늘날 한의학의 현대화 혹은 과학화가 이야기되고 있지만 의외로 연구 수준이 높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의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부족하다. 서강의 탄탄한 인문학적 전통과 근대 과학의 높은 수준이 한의학에 접목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금상첨화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 한의학을 비롯한 여러 의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강대 출신이 가세한다면 더 이상의 바람이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서강대의 우수한 역량과 한의학이 결합하여 명실상부한 동서고금의 융합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2002년 <동의보감> 번역서 펴내
박석준 동문은‘동의과학연구소'를 통해 한의학의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한편, 2002년 <동의보감> 내경편을 번역했다. 한의사뿐 아니라 양의사들과 동양철학,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소에서 역주 작업에만 무려 10년을 바친 결과였다. 쉽게 쓰려고 애쓴 결과 한의사나 한의대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 책이 되었다. 내경편에는 단순한 의학서를 넘어서는 전근대 시대의 우주관과 인간관이 들어있다. ‘느리게 살기' ‘아침형 인간' 같은 최근 트렌드가 이미 내경편에 나와있다. 더 나아가 박동문은 동의보감과 같은 한의학 원리가 존재하는 ‘치유공동체' 를 꿈꾸며 그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주)동의과학을 설립해 지금까지‘성취'라는 숙취해소제와 보양제 ‘양생고'를 제조, 시판중이다.

봄철 건강 상식 ‘꽃피는봄이오면’
<동의보감>에서는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봄은 묵은 것에서 새로운 것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살려내는 봄의 솟아나는 기를 받아들이기위해서 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다. 무조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한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하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한다는 말처럼, 신년 구상은 봄에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봄이 겨울의 얼어붙은 것을 풀어주는 것처럼 머리를 묶거나 싸매지 말고 옷매무새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이 좋다. 이것이 봄기운에 맞추어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방법이다. 이를 거스르면 간(肝)이 손상되고 여름이 되면 찬 기운으로 인한 병이 생기니 여름을 잘 지내기 어렵다.

결국 <동의보감>에서말하는 봄은 자연의 흐름과 내 몸과 마음의 흐름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로 본 서강출신 의료인 현황 학번별 80년대 - 학부별 자연과학대 최고


의대, 한의대가 없는 서강에서 어떻게 의료계에 종사하는 동문들이 배출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이 의료인의 길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원래 의대에 가고싶었으나 개인사정으로 잠시 꿈을 접어 두었다가 뒤늦게 도전한 자아실현형이 제일 많았고, 80년대에 운동을 하다가 제적되어 사회진출의 길이 막혀 의대에 재입학한 경우,졸업후 진로를 고민하다가 전문직으로서의 매력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의대에 재입학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모교에서 심리학 관련 과목을 듣고 의료인의 꿈을 꾸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의대의 경우 서강 졸업후 편입하거나 재입학을 했고, 한의사가 된 이들은 모두 다른 대학 한의과 대학을 다시 다닌 경우가 많았다. 모교 졸업까지 재학기간을 보면 남자 동문의 경우 평균적으로 7년이 가장 많았고 10년을 넘게 다닌‘장수생' 들도간혹 있었다. 여자 동문의 경우 4년이 압도적으로 많아 진로 전향에 발빠르게 대처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학번대별로살펴보면 80년대 학번 의료인이 58명으로 가장 많았고, 비교적 최근에 졸업한 90년대 학번이 34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최근 각종 고시에 여풍이 거센 것과 같이 의료계에 진출하는 여자 동문들의 숫자는 80년대부터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의사의 비율이 양의사에 비해 적은 까닭은 한의사의 지위와 인기가 격상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 것과 한의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동양철학과 상당한 정도의 한문 지식 등을 갖추어야 하는 등 도전하기가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졸업후 한의사의 꿈을 가지고 현재 한의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문들이 있어서 서강출신 한의사들이 점차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서강출신 의료인 동문들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에서 이들이 서강출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서 동문들이 찾아가도 서로 서강인이라는 것을 모른 채 진료를 하겠지만, 서강이란 토양에서 배출된 의료인들에게는 분명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공통적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서강 출신 의료인들이 함께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성할 수 있는 공감대가 될 것이다.

앞으로 의료계 동문들이 서강옛집을 통해서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주기 바란다. 가까운 곳에 있는 동문들이 찾아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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