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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편지-김용주(77.영문)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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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6-04-18 10:44 조회12,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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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노니는 계속에서 연어 낚시도 좋지만 사람이 그립구나

효범아(이효범, 77.영문)

 

 

정말 오랜만이구나. 이렇게 동문회를 통해 편지를 쓰게 돼서야 소식을 전하는 것 같아서 면목이 없다. 한국을 떠난 지도 벌써 5년이나 됐는데, 왜 그동안 서로 간단한 소식을 주고받을 여유도 없이 살았는지 나 스스로 부끄럽기만 하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그랬다는 구차한 변명은 생략하겠다.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매사에 점점 무덤덤해지는 건지, 게을러지는 건지… 문득 좀 섬뜩해지는구나. 아닌 게 아니라 이 캐나다라는 나라는 사람을 나태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1817년에 미국이 캐나다에 쳐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 캐나다 사람들이, “아니 미국애들이 여긴 뭐 하러 왔대?"라고 했단다. 미군은 캐나다땅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가 2주만엔가 스스로 철군했는데, 그 이유가 ‘할 일이 없어 너무 심심해서’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아무려나 이 나라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보수적이고 현실적이고 순박하다. 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한마디로 대변해주는 말이, “Wink wink, nudge nudge”, 즉 “좋은 게 좋은 것”이란다. 취미생활 1위가 gardening이라니, 짐작할 수 있겠지? 그러니 우리처럼 복잡하고 시끄럽고 치열한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따분한 곳이다.

다행히 난 조용한 걸 좋아하니까 큰 불만은 없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참 그립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게 가장 아쉽다. 두 번째로 아쉬운 건, 여기선 내가 좋아하는 붕어낚시를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이곳에 올 때 내가 쓰던 민물낚시 장비 일체를 몽땅 가져왔지만 써먹을 곳이 없구나… 호수나 저수지는 지천에 깔렸지만 낚싯대 펴놓고 그 예쁜 찌 바라보며 상념에 잠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작년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에 있는 어느 저수지에서 집에서 만든 떡밥으로 대낚시를 해봤는데, 오, 붕어 입질할 때처럼 찌가 스물스물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눈이 동그래져서 휙 챘더니 글세 빨간 금붕어가 올라오는 거야. 20센티미터쯤 되는 금붕어였는데, 아마 누가 키우던 금붕어를 방생했는데 그놈들이 용케 잘 살아남은 것 같다. 어쨌거나 그래서 좀 실망하긴 했지만 한동안 그 저수지 가서 찌 올리는 재미에 붕어낚시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작년 가을 연어 산란철에는 누가 연어 잡으러 가자고 해서 동네 가까운 강에 갔는데, 폭이 15미터쯤 되는 물 건너편에 사슴 일가족이 나와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구나. 자연을 받들어 모시고 사는 나라니 이런 광경이야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잠시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난 정확히 말해서 토론토가 아니라, 토론토에서 서쪽으로(나이아가라 폭포 쪽) 50킬로미터쯤 떨어진 Oakville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참나무골’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인구가 14만쯤 되는 소도시인데, 여기 처음 올 땐 몰랐지만 알고 보니 캐나다에서 손꼽히는 부자 동네라는구나. 대기업 총수, 정치가, 예술가 등, 명문세가 유명인이 많이 살고 있다네.

그래서인지 토론토나 밴쿠버에서 유학하거나 살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이쪽으로 많이 들어오고 있다. 토론토나 밴쿠버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심한 경우 전교생의 40퍼센트가 한국학생인 고등학교도 있단다. 그래서 내가 처음 들어올 땐 정말 한가하고 조용했던 이 동네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구나. 집값도 점점 오르고…

난 여전히 통역 및 번역으로 먹고살고 있다. 가진 재주가 없으니 이 쥐꼬리만한 영어 실력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야지... 작년 초까지는 한국 출판사들이 주는 일을 계속 했는데, 번역료를 떼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일감도 점점 줄고 해서 아예 책 번역은 포기하고, 지금은 이곳 정부나 기업에서 의뢰하는 번역 일만 하고 있다. 병원, 학교, 경찰서, 법원 등에서 들어오는 통역 일감은 그리 많지 않지만(한인 사회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간접 체험하는 재미에 하고 있다.

널 직접 마주보고 앉아 밤새워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그게 뜻대로 잘 안 되는구나. 학창 시절 C관 매점에서 라면 끓여 먹던 것, 나 대우 다니고 너 신라교역 다닐 때 북창동 먹자골목에서 만나 감자탕 먹던 것, 왕자다방에 죽치고 앉아 음악 신청하던 것 등등… 기억이 생생하구나.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이 흘러도 우린 그 시절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구나…

내가 언제 한국에 나가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한번 진하게 한잔 하자꾸나. 그때까지 이메일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용주(77·영문) 동문은 2001년 캐나다로 이민, Halton Multicultural Council 이라는 정부산하 비영리기관 전속 통역관이자 통역 및 번역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출간한 번역서로는〈뉴에이지 혁명> <계속되는 이야기> <콜린 파웰> <피아노 이야기> <멀린> <남자의 갱년기> <그리운 사람-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갈릴레오에서 터미네이터까지> <마지막 전범> <내 아이 EQ 최고로 높이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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