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레터-표정훈(88철학) 풍수로 풀어보는 서강인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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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6-03-27 14:37 조회13,4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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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88․철학) 출판평론가
'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네'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김수철의 '나도야 간다'였던가? 이맘 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술자리 약속을 할 때면 그 친구는 이렇게 묻곤 했다. "야! 캠퍼스에 봄이 왔냐? 좋겠다."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한 다음부터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면 나도 그렇게 묻곤 했으니, 캠퍼스에는 역시 봄이 제격인가보다.
봄이 오는 노고 언덕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다 보니 느닷없이 노고산의 풍수지리적 특성이 생각난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얼치기 풍수 지식을 동원해 말해보자면, 노고산은 대체로 금산(金山), 즉 금의 기운이 강한 산에 속한다. 청렴하고 의리를 중시하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기운이다. 안정, 조용함, 명예 등을 지키고 싶어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말하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청렴하게 명예를 지키며 묵묵히 옳은 일을 추구하는 서강인들을 많이 봤으니 말이다. 의리만 해도 떠들썩하게 의리를 외치는 게 아니라 곧고 굳은 심지로 올바르게 일에 임하는 의리가 서강인의 의리가 아닌가. 금에 해당하는 방위인 서쪽에 있는 문, 즉 서대문을 돈의문(敦義門)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서울의 서쪽이자 한강 서쪽인 서강의 서(西)자도 금의 기운에 해당하고, 계절로도 금은 서늘하고 차가운 가을이다.
그런데 화창하고 따뜻한 봄기운이나 화끈하고 뜨거운 여름 기운이 부러워질 때도 있었다. 그 기운을 친화력이라고 하든, 추진력이라고 하든, 과감함이라고 하든, 서강인들이 뭔가 보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라고 할까. '으쌰! 으쌰!' 외치면서 어깨동무하고 뜨거운 정을 과시하는 다른 대학 학생들을 볼 때면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15년 정도 사회 생활을 하고 난 지금에 와서는, 노고산에서 4년 동안 듬뿍 받은 금의 기운이 고맙다. 뜨겁게 달구어졌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순간의 열정보다는, '우리가 남이가' 정서로 똘똘 뭉쳐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삐뚤어진 의리보다는, 화창한 분위기에 휩쓸려 종잡을 데 없이 방황하는 맹목적 낭만(?)보다는, 올바르고 냉철하며 합리적인 기풍이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족 하나. 노고산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어올랐던 적도 있다. 6.25 전쟁 당시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거쳐 서울로 진격한 미 제5해병연대 병력이 격전 끝에 노고산을 9월 21일에 점령했던 것. 당시 작전 상황에서의 이름은 105 고지였다. 노고산, 와우산, 안산일대는 서울 수복을 위한 격전이 벌어졌던 지역이며, 광복 전에는 일본군 훈련 진지와 방어 시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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