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CEO를 찾아서-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이콘 류병일(72.물리) 삼성전자 부사장(메모리사업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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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1-24 14:45 조회21,0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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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 어떻게 먹여 살릴 지 고민하죠"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이콘 류병일(72.물리) 삼성전자 부사장(메모리사업부 연구소장)
1월6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2시간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어렵사리 연구소에 당도한 것도 모자라, 건물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삼엄한 검색을 받아야 한 것. '아무나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삼성반도체연구소는 '국민기업' 삼성전자의 핵심역량이 결집된 곳이다.
삼성전자 부사장(메모리사업부 연구소장) 류병일(72.물리) 동문은 바로 이 '비밀의 공간'의 수장이다. 1980년부터 삼성전자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그는 한국의 반도체 신화를 일군 주역.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을 내세우지 않고 그저 "경쟁국들이 한국의 기술을 앞지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며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류 동문은 반도체에 인생을 건 사람이다. 1973년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은사의 권유로 한 반도체 기업의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면서 반도체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반도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더냐"는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물리학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한때는 방황도 했었죠. 그런데 한 반도체회사(페어차일드)의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어요. 하루는 선배 직원의 부탁으로 적분 문제를 풀었는데, 그 해답이 곧 트랜지스터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열쇠더라고요. '물리공식이 반도체에 이렇게 쓰이는 구나' 생각하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신기술인 만큼, 무한한 발전 가능성도 있고. 3학년 때부터는 전공과목 중에서도 공학과 연계된 것을 모조리 들었죠. 반도체는 '정신'이고 '예술'이에요. 그 작은 물건에 모든 정보가 밀집돼 있으니까요."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선진국보다 2~3배 정도 수준이 뒤처져 있었다. 1973년 삼성전자는 부도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류 동문은 삼성전자에서 보낸 30년 가까운 세월을 돌이키며 "메모리의 효시인 64K 디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1983년을 특히 잊을 수 없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 삼성전자가 64K 디램 개발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일본 회사들이 박수를 쳤어요. '돈 들여 망하는 첩경에 들어섰다'고 말이죠.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실무담당자였던 저는 미국 마이크론사(社)에서 박대당하면서 어깨너머 그 기술을 배웠어요. 결국 1983년 12월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디램 생산에 성공했고요. 92년에는마침내 세계 D램 시장 1위로 올라섰어요.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이 너무나 고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최고의 희망사항이었지만, 그냥 일에 쫓기다 보니 사표를 던질 타이밍을 놓쳐버렸죠(웃음). ‘우리가 잘 해야 국가가 산다’는 사명감으로 지금껏 일해온 것 같습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50 나노기술을 이용한 16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해 또 한번 ‘황의 법칙’을 증명해 보였다. 황의 법칙이란 ‘반도체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의 이론. 그러나 삼성전자도 최근 마음을 놓을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독주를 막기 위해 미국·일본 업체들이 대대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나섰기 때문. 류 동문은 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한국 반도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배타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의 회사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에 뛰어들고 있어요. 하지만 삼성전자는 ‘기술과 제품의 리더십을 더욱 강화한다’는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할 생각입니다. 오히려 어려워진 대외 여건이 삼성전자에겐 큰 자극제로 작용할 거예요.”
반도체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문득 자신의 다이어리를 내보였다. 손때 묻은 검은 수첩엔 2005년 한해 진행된 회의 내용과 아이디어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을 대학시절부터 갖기 시작했다”며 “서강대에 감사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강에서 받았던 전인교육이 제가 큰일을 결정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얼마 전 서강대에서 ‘반도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후배들이 타대 학생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해 한껏 역량을 발휘했으면 합니다.”
한 연구자의 치열한 몰두는 국가의 근간을 좌우하는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CEO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류 동문의 일성에서 나는 한국의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다.
이남희(98·영문) 여성동아 기자·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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