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장인⑤-이경실(84·영문) (주)메타브랜딩 디자인부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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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10-14 20:45 조회23,7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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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로고에 문학의 향기 담아냅니다
디자인계 최전선에 선 이경실(84·영문) (주)메타브랜딩 디자인부문 이사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메타브랜딩의 디자인 부문을 이끄는 이경실 이사(84·영문)와 전화통화를 하고 난 후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막상 만나보니 이 이사는 아담한 체구에, 당차기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섬세함과 남다른 감성이 요구되기 마련일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메타브랜딩은 네이밍 전문 회사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네이밍과 기업컨설팅, 디자인을 겸하고 있다. 본래 디자인 부문이 없었지만, 올해 이경실 이사가 이끌던 '디자인 시그니엄' 과 합병하면서 디자인 부문의 비중이 커졌다. 이 이사가 이끄는 디자인 부문은 크게 두 팀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팀이고 다른 하나는 비주얼 컨설팅 팀이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한 회사 혹은 브랜드 등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CI(Corporate Identity)와 BI(Brand Identity)는 인쇄물과 홍보물, 간판, 슬로건 등을 비롯해 직접적으로는 광고와 제품 패키지 등에 직접 노출이 되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관건이다. 그동안 SK텔레텍의 스카이(SKY), SK텔레콤의 모네타(MONETA), 역시 SK텔레콤의 온라인 모바일 서비스 체험사이트인 티월드(T·World), GM 등의 로고 작업을 맡았다.
비주얼 컨설팅 팀은 스폰서 십이나 마케팅과 관련된 그래픽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일을 주로 한다. 그동안 2002월드컵과 유로2004 등을 후원한 현대자동차의 스폰서십 로고 등을 맡아 작업해왔다. 이 모든 업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경실 이사다.
순수학문 위주의 서강과는 관련이 없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경실 이사의 학부 시절 전공은 영문학. 그 출발이 궁금했다.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당시는 교문 앞에 최루탄이 난무하고 학생운동이 한참 심각하던 때였는데, 학생운동에 대한 두려움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을 했지만 용기 있게 행동하는 편은 못되었죠."
대신 서클활동에 눈을 돌려, 서강연극회에서 활동했다. 숨어있던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를 발견하면서 연극반 활동에 열심이었다. 4년 간의 대학 생활 끝에 금융계에 취직을 했다.
"리스회사에 다녔어요. 당시(1980년대 후반)에는 리스를 비롯해 금융산업이 활발했었던 터라, 큰 생각 없이 취직을 했고, 또 그 정도 회사에 갔으면 취직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러나 안정된 회사생활은 그녀에게 앞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불러일으켰다.
"남들이 사춘기 때 하는 고민을 그제야 하게 된 거죠. 1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고 나니, 단조로운 일과와 시쳇말로 '철밥통' 분위기에 질리더라고요. '내가 이곳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 한, 평생 이렇게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살겠구나' 라는 생각과 금융계를 선택한 것이 사회적 유행에 따른 것이지 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어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가 바로 디자인이었다. 학원에 갔더니 그래픽 디자인을 추천했다. 미술에 대해 남달리 재능이 있었다거나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어 보였고 디자인도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꼬박 4년을 회사를 다니면서 그야말로 주경야독으로, 밤이면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영어공부를 하면서 유학 준비를 했다.
드디어 92년, 27세의 나이에 디자인 전문학교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했다. "수십 년간 준비해온 이들에 비해, 테크닉은 딸릴지 모르지만, 가능성과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파슨스의 분위기 덕분에 합격이 됐던 것 같아요. 또 학부시절 전공인 영문학과 직장생활 경험도 한몫 했던 것 같고요" 전공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택했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인의 다른 이름이다. 다행히 학점이 인정돼서 3년 만에 학부를 마치고 학위를 딸 수 있었다. 뉴욕에서의 학교생활은 재미있었다. 파슨스는 다양한 인종, 연령의 학생들이 모인 까닭에 적응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왔다. 귀국 후 CI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그러나 취직했을 당시만 해도, 여전히 우리나라 디자인 업계는 도제시스템에, 주먹구구식 일 처리 방식이 난무했다. 그래서 2000년 '디자인 시그니엄' 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시장개척은 쉽지 않았다. 8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산업을 집중 육성한 나머지 디자이너가 넘쳐나, 시장은 작은데 군소 디자인 업체들이 난립했기 때문이었다.
“후발주자는 여간해서 기회조차도 갖기 쉽지 않더군요. 또 CI 및 BI 디자인이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전략과 긴밀한 관계를 갖다보니 경영 전반에 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면서 MBA를 따냈고, 올해 초 메타브랜딩과 합병하게 됐다.
그녀의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다. 그녀가 생각하는 해법 중 하나는 문학이다. 잘 알려진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로고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을 소재로 하고 브랜드 네임은 멜빌이 쓴『모비딕』에 등장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항해사의 이름을 따왔듯이 디자인도 문학을 참조·인용함으로서 좀 더 풍부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경실 이사는 “서강에서의 4년과 영문학을 전공한 것은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디자인 일을 하는 제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줬다"고 말한다.
윤민용(95·영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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