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편지-신관우(88.화학)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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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5-08-02 19:11 조회14,66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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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89.국문) 에게
오랫동안 써와서 익숙한 말을 갑자기 바꾸어서 말하라고 하면 왠지 강요당하는 것만 같고 어색한 말들이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라 부르라 하는 것이 하나고,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우리에게'를 '저희에게'로 낮추어 하라고 하는데 아직도 어색하기만 합니다. '생명과학과' 진환이의 편지를 제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동문회의 연락을 받고, 아직도 '생물과' 진환이만이 내가 오랫동안 아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웬일인지 만난지 15년이 넘은 친구들의 이름들도 글로 쓰려하니 어색하고, 또 '보고싶다'라고 쓰려하니 아련히 복합된 감정들이 머릿속에 교차되고 있습니다.
오랜만이다, 영재야.
내가 동문회에서 릴레이편지를 부탁받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화학과로 보낼까, 아니면 국문과로 보낼까 많이 망설였다. 내가 전과-휴학-입대-교환학생 등이 이어지면서 서강대에 8년 동안이나 적을 두었기 때문에, 기간 기간마다 참 많은 동문 선후배를 만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대학원 진학과 유학을 거쳐 이제 지방에 자리를 잡다보니, 동문들 만나고 연락하는 일들이 소원해져 있다. 영재, 너는 이런 공개편지라도 편하게 받아 줄 수 있겠지? 내가 한국에 없던 관계로, 지난 8년 동안 거의 연락 없이 살아왔지만, 네가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보기 좋더구나. 사실 이 편지는 네 이름을 빌려서 쓰고 있지만, 실은 우리 둘이 함께 알던 많은 선후배 동기, 선생님에게 쓰려고 한다.
우리들 군대이야기는 접어두고, 복학한 뒤 이야기로 시작해야겠다. 우리 같이 복학해서 누구보다도 친하게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었지. 그 시골 촌놈 같던 광희까지 합세하여, 우리 화학과, 경제과, 국문과의 복학생들과, 우리 고등학교 동문들 모두 섞여서 농구와 심지어 야구시합까지 하고, 학교 주변의 술집을 전전하던 시절이 그림같이 떠오른다. 주로 내 화학과 후배들과 네 국문과 후배들이 한 팀이 돼서 경제과와 붙었던 것 같은데. 누구누구학파 운운하며.....
이 편지를 계기로 그때 그리운 시절과 사람들을 모두 떠올리고 싶은데, 벌써 10년이상 잊고 살아서 이름이 다 기억나질 않는구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면, 아마 이 편지를 보면서 많이들 서운해 할 텐데... 우리 화학과 에서는항상 맏형 노릇하던 창호 형과 예쁜 은아 선배, 그리고 후배들인 기일이와 성훈이, 명호가 있었고, 국문과는 방섭이와 북에서 온 영철이 형, 그리고 순덕이도 있었고, 몇 명의 후배들도 더 있었던 것 같고. . . 당연히 내 초-중-고-대 후배인 물리과에 원민이(지금쯤 박사를 받았으려나? )와 지금 맨하탄을 누비고 있을 정외과의 충훈이도 함께 어울리곤 했었지. 광희네 팀들은 얼굴들은 다 기억날 것 같은데, 이름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구나. 처음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문과에몇몇 후배들도 있었는데... 우리 나중에 전체를 다 리스트업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것 같구나. 한 20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자격증에, 고시에, 창호 형처럼 졸업준비에 열심히들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너에게 조금 부러웠던 것이, 너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많이 사서 인간관계가 참 쉽게 깊어지는 경우가 많았었지. 그래서 항상 네가 먼저 새로운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나중에야 나도 잘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연장선상에서, “김영재”하면 꼭 떠오르는분인 김남희 선생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우리말고도 그 당시 학교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께 토익을 배웠었는데, 특히, 선생님께서 우리를 참 많이 아끼고 좋아하셨지. 나도 이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열심히 가르칠 수 있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수업후에 K관 지하까지 함께 걸어오면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얼굴 가득히 웃으시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내가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서도 가끔씩 네게 선생님 소식 듣곤 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미국에 나가셨다고 그랬지?
너나 나나 늦게까지 학교를 다녀서, 이제 대학을 졸업하여 흩어진 지 올해로 딱 10년이 되었구나. 한번 정도는 연락이 닿는 사람들이라도 모이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때처럼 반갑고 재미있을까? 아니면, 서로들 어색하고 서먹하기만할까? 영재야, Let's find out!
신관우(88·화학) 동문은 현재 광주과학기술원의 신소재공학과의 조교수로 재직중이며 생체계면구조에 관한 국가지정연구실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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