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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훈 동문 弔辭 "모자란 자식들의 앞길에 등불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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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10-26 11:10 조회17,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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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느님, 하느님,

 

혹시 우리 프라이스 신부님 하늘나라에 오셨나요? 누군지 알아보셨어요? 키 크고 코 크고 해맑게 잘 생기셨어요. 미국말도 하시는데 넘어질 때 급하면 한국말로 “어이쿠!” 그러시는 분이예요. 

 

하느님, 오늘 하느님께 간절히 부탁좀 드리겠습니다. 우리 프라이스 신부님 좀 잘 봐주십시오. 원래 부끄러움을 잘 타시는 분이랍니다. 신부님은 서울의 지하철 노선과 시내버스의 지선 번호까지 모두다 외우시지만 하늘나라에선 그 실력을 발휘하시지 못할거예요. 택시값도 없어요. 그리고 최근에 음식을 못드셨으니까 무얼 좀 드리실수 있나요? 무얼 좋아하냐고 하느님이 물어보십시오. 틀림없이 아무거나 좋다고 대답하실거예요. 사실은 좋아하시는게 있죠. 한국식 갈비, 신촌의 돌구이, 그리고 초콜렛이예요. 술도 가리지 않는다고 하시겠지만 실은 배일리스라는 크림술을 좋아하시는데 술꾼들에겐 술도 아닐겁니다. 

 

하느님, 하늘나라 고참 선배님들께 우리 신부님 반갑다고 두 손 너무 꽉잡지 마라고 일러주십시오. 얼마 전에 넘어지셔서 왼손가락이 세 개나 부러졌어요. 거기 마중나오신 선배님들 중에 우리 신부님 형제들이 계실테니까 불러주실 수 있죠? 형제가 아홉이나 되는데 우리 신부님이 여덟 번째이고 역시 사제의 길을 걸으신 형님도 두분이나 계신답니다. 드넓은 미국땅의 시골 네브라스카에서 태어나 전란의 상흔을 미처 씻지 못한 낯선 코리아에 오신지 반백년, 그 격동의 세월이 묻은 몸을 스스로의 뜻에 따라 이 땅에 누이시지만, 고향의 부모님도 얼마나 그리우셨겠습니까? 부모님이 보신다면, “Basil, you are back home!” 그러시겠지요. 

 

저는 신부님을 처음 만나기 직전에 제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때 장례식에서 슬픔을 참고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밝은 목소리로 읽었어요. “아버지가 이른 귀향길에 오르심은 훗날 저희들을 마중하시려고 등불을 준비하기 위해서이시지요”라구요. 그 후에 만난 신부님 - 신부님이 영어로 “Father”인 것이 어찌그리 반가웠던지요. 만난지 10년이 지난 1983년 환갑때 이부자리를 우리 식으로 해드릴수 있어서 행복했구요, 1993년 고희때 잔치상을 벌일수 있어서 즐거웠구요, 작년 팔순때 써드린 대형 플래카드 “가자, 90을 넘어 100으로 가자!”를 간직하시겠다는 신부님을 보고 정말 뿌듯했답니다. 하느님이 관장하시는 永生에 비하자면, 저희가 이 땅에서 맺은 30년은 찰나에 지나지 않겠지요? 

 

하느님, 하느님은 착한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신다면서요? 저는 처음엔 하느님이 안계신줄 알았어요. 왜 착한 사람들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되는것인가, 하는 불만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제 알았습니다. 하늘나라엔 평안하고 전쟁도 없고 인종 차별도 없고 귀천의 차이도 없이 永生하는구나, 그래서 착한 사람들을 데려가시는 하느님이 계시는거구나...... 

 

그리고 하느님, 우리 신부님 야단 좀 쳐주세요. 누가 선물로 스웨터나 목도리 사드리면 이젠 남 좀 주지 마라고 단단히 혼내주세요. 하느님이 직접 스웨터 사주시려면 눈대중보다 큰 걸 사주셔야돼요. 최근 못 잡수셔서 쏙 빠졌지만, 손뻗어 가슴 앞뒤를 만져보세요. 굉장히 두껍답니다. 그리고 이제 찬바람이 불게되면 우리 신부님 목이 좀 굳어지시거든요. 제발 목도리 누구 주지 말고 꼭 두르시라고 일러주십시오. 거기엔 소년의 집이나 달동네 없지 않겠어요? 죄송합니다 하느님. 전지전능하신 줄 알면서도 괜히 투정부렸습니다. 투정조차 안부리면 이 迷妄의 땅에 남은 어리석은 저희는, 달리 해드릴 일도 없고 또 남기신 것도 없어서, 신부님 냄새가 날아갈까봐 두려워서 그랬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신부님께 직접 한 말씀만 드리고 싶어요. 신부님, 저희를 굽어보고 계시는거 맞지요? 아직 이 땅에서 밤낮으로 헌신하고 계시는 또다른 프라이스 신부님들께 더 큰 용기와 힘을 부어주십시오. 그리고 저희처럼 모자란 여러 아들, 딸들의 앞길을 그 준비하시는 등불로 밝게 비춰주십시오. 신부님, 우리 부디 웃으며 하늘나라에서 만나요. 

 

정 훈(70.신방) 화요가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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