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졸업생 모교 엄정식 교수가 본 서강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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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12-03 15:12 조회13,9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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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은 어디로 가야하며 또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모교가 나아갈 바 좌표를 탐구하는 것은 늘 『서강옛집』의 가장 큰 화두이다. 이런 화두 아래 서강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서강과 함께 해온 1회 졸업생이자, 현재는 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엄정식(60.철학) 교수와 인터뷰를 한다. 과연 서강이 처음 탄생했을 때는 어떤 좌표를 가지고 있었을까? 1회 졸업생만이 대답해줄 수 있는 비밀일 듯싶었다.
“서강의 남다른 점은 도덕 교육의 우월성”
강의와 집필활동(엄교수는 현재까지도 거의 매해 저술을 발표하는 흔치 않은 연구자이기도 하다)에 쫓기면서도, 많은 행정적 업무로 하루하루를 새로운 상황들 속에서 맞이하는 분인 만큼, 먼저 근황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까지는, 대외적으론 한국철학회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제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안 우연찮게도 많은 일들이 생겼죠. 아마도 가장 큰 일은 2008년 개최 예정인 세계철학자 대회를 우리나라에 유치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대학원장을 계속 맡고 있는데, 이런 자리에 있다보니 모교에 대해 추상적, 낭만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최근 엄교수는 문광부 간행물윤리위원회 서평 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실 이렇게 바쁜 업무 배후에는 또 다른 엄교수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빡빡한 일정 뒤로 어떻게 마술처럼 시간을 빗어내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꾸준히 작품을 생산해 내는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다. 얼마 전엔 서강의 강미반 졸업생들(‘kpmind’라는 모임을 가지고 있다)과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그가 그린 그림이 서강대 공식 연하장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했으니 녹녹치 않은 실력이다.
“여러 가지를 화폭에 담는데, 당진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안정돼요.”
당진은 그의 선친의 고향으로, 수년 전부터 엄교수는 이 곳에 서재 한 칸을 마련하고 서울에서의 업무로부터 놓여 날 때마다 이곳에 머물며 연구와 그림 그리기, 그리고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을 시정 넘치는 문체로 표현한 『당진일기』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엄교수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를 때는 맨 처음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 보는 법이다. 엄교수에게 서강은 맨 처음 어떤 지표를 바라보며 첫발을 내디뎠는지 답을 구했다.
“돌이켜 보니, 생의 전부를 서강대와의 연관 속에 살아왔군요.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 서강이 쫒던 지표는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이었습니다. 이 표현에는 서강을 창립한 예수회의 수도자 정신, 즉 세속적 영달과 거리를 두는 청렴한 삶의 자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실은 없으면서 겉으로 크게 부풀리는 것(이것이 바로 ‘크지만 추한 대학’이죠)을 좋아하지 않는 이런 수도자적 지표와 안정된 재정적 뒷받침이 초기부터 서강을 탄탄한 명문대의 자리에 올려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서강은 어떤가? 처음 탄생하던 무렵 쫓던 지표를 얼마나 쫓아갔는가? 혹은 그 지표를 아예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서강은 여전히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인가?
“지금 서강은 그렇게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아름답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요. 우선 외부적인 것으로서, 교육 정책 자체가 서강이 창립 당시 보다 규모를 늘려나가지 않을 수 없게끔 한 면이 있습니다. 서강이 왜 더 이상 아름다운 대학이 아니냐 하는 점과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내부적인 요인'일 텐데, 단적으로 말해 출발 당시 지향해야할 지표로서 간직했던 구도자적 자세가 흐트러진 것이 요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또한 서강혼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할 터입니다.”
흔들리는 서강혼은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야 할까? 아마도 지금 서강이 가져야 할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서강의 지표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또 쫓을만한 것인가 물어야 할 듯싶었다.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이라는 서강 최초의 지표를 상기시켰던 것은 지금 당장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요.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아름다운 대학이기 위해서 꼭 작아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화두로 삼을만한 물음은 이런 것이겠지요. ‘작지 않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대학으로 갈 것인가?’”
엄교수는 서강의 미래가 달린 이 물음에 성실히 답변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진정한 창조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창조적 사유를 ‘함께 꾸는 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꿈은 혼자 꾸면 꿈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여럿이 같이꾸면 현실이 되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서강의 앞날을 위해 함께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꾸어야 할 꿈 또는 우리가 설계할 서강의 미래를 탄탄히 준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취약한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작업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엄 교수는 지적한다. 총장직은 청렴한 서강의 이미지를 계속구현해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예수회가 담당하되, 학사관리나 재정확보 차원에서 유능한 인사가 부총장직 등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또한 서강대는 한국 가톨릭 최고의 교육기관이며 교육을 통해 세상에 가톨릭의 가르침을 전하는 중요한 기관인 만큼, 서울 교구를 비롯해 가톨릭적 배경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집단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재정 확보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엄교수는 서강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동문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과거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모교를 찾고 또 동창들을 만나지요. 그럴수 있는 모교가 있고 동문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낭만적인 경우 외에, 동문이모교와 관계 맺는 또 다른 방식은 재정적인 사안을 비롯한 모든 일에 있어서‘무조건적’ 후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행정적 업무는 당연히 학교 내부의 전문적 인사가 책임지고 해나가야 하겠지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는 든든한 후원은 아마도 동문들의 사랑으로부터오는 것이겠지요.”
엄교수는 앞으로 서강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현금의 서강대 학생들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관심을 표명했다.
“초창기 때에 비하면, 오늘날의학생들은 서강인이라는 점에 대한 자긍심이 다소 약한 듯이 보입니다. 그때 우리가 서강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졌던 것은 ‘남보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리만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우리만의 것’ 이란 무엇일까?
“서강인들만이 누리는 그 우리만의 것이 무엇이냐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군요. 1회입학식 때 길로련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있는데, 아직도 가슴에서 울리며 어린 학생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습니다‘.서강대는 여러분들의 머리나 손발 뿐 아니라, 가슴도 가르친다.’가슴으로 받아들인 그 가르침이란 구체적으로 ‘남을 위한 삶’이라는 도덕적 가치였죠. 그런 가르침 속에서 초창기 서강대생들은,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교육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서강이 우월하다면 바로 신심 있는 교육 기관 만이 성취할 수 있는 도덕 교육의 우월함입니다. 오늘날의 학생들도 이런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육 기관으로서 서강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자 성취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엄교수는 인성교양프로그램의 개발에 매우 적극적이다(현재 그는 인성교양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서강 교육은 세계인으로 기능할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국제화’에 힘써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나보다 이웃을 더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을 길러내기 위한 인성교육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엄교수의 생각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대학. 정말 귀중한 추억이다.이제 이 추억 속의 서강은 오늘날의 서강에게, 작아질 수도 작아질 필요도 없으나 더욱 더 아름다운 대학이 되라고 재촉하고 있다. 어떻게 우리는 정말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서강대는 여러분들의 머리나 손발 뿐 아니라, 가슴도 가르친다.’ 이 신비스런 가르침이 마음을 울리고, 서강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깊은 숙고에 빠트리는 한, 우리는 이 가르침으로부터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줄 별자리들을 꼭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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