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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편지 -진수미(70.신방) 교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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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10-25 17:10 조회15,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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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미(70 신방) 교수에게

 

편안하신지요? 얼마 전 전화를 받고, 참 반가웠습니다. 어설픈 일처리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위로를 해주어 고맙습니다. 마침 정훈한테 공개적인 릴레이 편지를 받고 이런 저런 대학시절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훈이 말대로 저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 값을 못하다보니 마음만 무겁습니다. 이제 주제넘은 짓은 그만하고 그저 밥이나 잘 먹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밥보다는 술을 더 많이 먹고 삽니다. 

 

고마운 동기들한테는 그냥 개기기로 하고 선배로서 친구처럼 도와주시는 최창섭 교수님께 용건 있을 때만 찾아뵙는 잘못을 비는 편지를 쓸려고 망설이던 참에 진교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역시 동기들 생각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못 다닌 탓에 그냥 모이는 친구들이라고는 대학 동기들뿐입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저로서는 별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중학을 졸업하고 무교동에서 깡패 똘마니를 하다가, 경기도 마석 보광사에서 불목하니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스무 명 남짓의 대학생 남녀들이 캠핑을 왔는데 스님이 땔감과 된장 등을 가져다주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또래라서 그랬는지, 제가 먼저 물어봤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1회생이라는 것. 그런데, 연극도 하고, 드라마도 만들고, 영화촬영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남녀가 함께... 그때만 해도 저는 여자들은 이화, 숙명 아니면 남자들이 다니는 대학의 음대나 미대에만 다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69학번 신방과 2회 선배들과 함께 시험을 쳤습니다. 100개쯤 나온 영어 문제를 17개인가 풀고 있는데 끝나는 종이 울렸습니다. “제5항, 답이 없다.”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지요. 교과서를 제대로 보든가 쉬운 회화책이라도 봤어야 했는데... 떨어지고 나니 얼마나 억울했던지 1회 선배들 원망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다음해 70학번 신방과 3회생이 되었고 우리 산동네에서는 최초의 대학생이 나왔다고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입학하자마자 가장 중요한 게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학생들과는 도대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저 말고도 또 있었나?) 어느 날인가 강의실에 들어서니 진수미가 혼자 빨간 가죽(?)옷을 입고 앞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며 옆에 앉아도 좋으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 없이 딴 자리로 가버렸습니다. 

 

그 후 저는 여자들하고는 데모도 같이 안하는 데모꾼이 되었습니다. 군대 갔다 와서는 구두닦이, 신문팔이, 종이 줍는 걸뱅이, 양아치 노릇을 했습니다. 자고 먹을 데가 없어서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쓰레기장에서 분류작업 중에 발견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도 서강대 신방과를 분명히 졸업했습니다. 꿈속에서는 아직도 졸업을 못했습니다만. 8년 산 징역에 대한 꿈도 전혀 안 꾸는데 말입니다. 

 

참, 징역살이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지요?! 진교수가 제 딸 여림이의 학비를 보내주었습니다. 무려 20년 전에 몇 번 본 기억뿐이 없는, 곁에 앉았다고 해서 딴 자리로 가버렸던 그 진수미가 말입니다. 다시 한 10년이 지나서 30년 만에 만나서 고맙다고 했더니 진교수는 자신의 어려웠던 유학시절 이야기만 했지요. 진교수가 대구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길안내 겸 동승했던 그때 처음 한번 뿐이지요?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 또한 별난 인연인가... 아니지요. 사실은 우리 서강대 신방과 70학번 친구들이 지금도 나누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씨 덕분에 생겨난 자연스러운 일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다음번 동기 모임에서는 꼭 보고 싶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신방과 70학번 애물단지 장의균 드림.

 

장의균(70.신방) 동문은 역사연구가이자 출판인으로 현재 민족예술인총연하에서 남북문화예술 교류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1992년에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인 Human Right Watch로 부터 'The Fund for Free Expression'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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