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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편지 - 장영희(71.영문) 모교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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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9-02 14:56 조회23,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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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제자 이경순(12002.영문)에게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너에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쓰니 조금은 쑥스럽고 민망하지만, 그래도 내심 반가운 마음이 더 크다. 나와는 선생-제자의 인연뿐만 아니라 나의 손발이 되어주다시피 한 조교, 그리고 네가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가톨릭에 입교하여 대모녀의 인연도 함께 가지게 된 너. 글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 앞으로 서강출신의 멋진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는 너.

 

어제 넌 친구가 선물했다면서 책 한 권을 내게 보여 주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이십대에 네 인생이 결정된다> 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목차부터 참 흥미롭더라. "팔자 편한 여자가 될 준비를 하자." "20대, 노는 물의 수질관리를 시작하라" "운명을 바꾸기 위한 투자를 시작하라" "돈 있는 여자는 아름답다.." 즉, 노는 물의 '수질관리'를 해서 돈많은 남자들과 결혼하여 팔자 편한 여자가 되라는 삶의 '지침서'였다. 그 책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네가 물었지만, 약속 시간이 바빠서 난 겨우 목차만 보고 연구실을 나와야 했지. 하지만 암만 생각해도 요새 젊은 여성들에게 베스트셀러라는 그 책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지난 번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이 났을 때다. 2만원짜리 시계를 스위스에 가져가서 재수입해 오면서 명품시계라고 2백만원에 팔았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했다.  뉴스 시간에 기자가 한 젊은 여성에게 왜 명품을 선호하느냐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길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 여자의 말에 나는 적이 놀랬다. 단지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기 위해서 그 많은 돈을 투자를 하다니. 목발 짚고 다니니 누구나 다 나를 쳐다보는지라 나는 남의 시선이 별로 반갑지 않은데, 그 여자는 바로 그 시선 때문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은 부러워서이고 나를 쳐다보는 것은 불쌍해서라고 하겠지만, 사실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 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단지 호기심이나 구경차원을 넘지 않는다. 

 

‘돈많은 여자가 아름답다’는 그 책의 메시지는 그렇게 명품으로 겉모습을 꾸미고 부자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여자의 삶에서‘성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남에게 기대서라도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이 행복의 기본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더 많이 살아온 연륜으로 감히 말하지만, 그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그렇게남들의 가치기준에 따라 겉모습을 꾸미고 남과 비교하는 것은 기막힌 시간낭비이고, 그렇게함으로써 나를 없애고 남에게 의지하는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는 삶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인생을 조각조각 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명품백을 들고 다니던 비닐 백을 들고 다니든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 가이다. 그래서 남에게 기대는 삶보다 내 두 발로 서는 삶을 추구하는 여자가 돈 많은 여자보다 더 아름답고, 남이 갖다 주는 꽃을 기다리기보다 내 정원을 스스로 가꾸는 여자가 훨씬 더 멋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십대에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만이 결국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비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네게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십대를 지내고 있는 나의 모든 제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입 아프게 말해도 이 모든 것은 절대로 말이나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몸으로 살아내야 배울 수 있다. 그래도 청출어람 (靑出於藍),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말도 있잖니. 선생보다 똑똑한 나의 제자들은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일찍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겠지. 어느덧 개학이고 어느새 바람이 상글하구나. 치열한여름이 지나야 성숙의 가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너와 나의 모든 제자들의 아름다운 삶을 기원하며. . .

 

장영희 (71·영문) 모교 영문과 교수는 영문학자·번역가·수필가로 활약 중이며 지금까지 <축복> <생일> <문학의 숲을 거닐다> <내 생애 단 한번> 등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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