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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계 대부 김동원(74.신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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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4-03-22 16:03 조회19,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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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를 찾아]독립영화계 대부 김동원 감독 2004/03/18(경향신문) 한국에서 독립 다큐멘터리를 업으로 하는 건 자신의 ‘전부’를 거는 일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죄어오는 경제적 어려움 등을 떨쳐내고 제반 사회문제에 지속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가늠케 한다. 한국 독립영화계의 대부로 손꼽히는 김동원 감독(49)은 독립 다큐와 1986년에 인연을 맺었다. 89년 가난할 빈(貧)자를 쓴 ‘빈영상’을 설립, 영상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91년 다큐제작집단 ‘푸른영상’을 창립, 푸른 세상에 대한 갈망을 집적한 다큐를 제작해왔다. ‘상계동 올림픽’ ‘명성 그 6일의 기록’(가운데) ‘송환’(아래) 등 9편을 감독했고, ‘동강은 흐른다’ 등 수십편을 제작했다. ‘상계동 올림픽’(88년)은 서울 상계동 빈민촌 철거민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을 담은 김감독의 데뷔작. 한국 독립 다큐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이자 실천적 다큐의 정수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왔다. 8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과 91년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을 끌었다. 이후 ‘벼랑에 선 도시빈민’(90년) ‘미디어 숲 속의 사람들’(93년) ‘행당동 사람들’(94년)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95년) 등을 선보인 김감독은 97년 ‘상계동…’을 뛰어넘는 수작을 내놓았다. ‘명성 그 6일의 기록’이다. ‘명성…’은 87년 6월 항쟁 당시 명동성당에서 6일간 농성을 벌였던 사람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6월 항쟁의 전개과정과 그 의의를 짚었다. 농성 종반, 성당 관계자의 반대로 농성 해산 여부를 놓고 벌어진 치열한 설전 장면을 찍을 수 없게 된 김감독은 이 장면을 극영화와 다큐 기법을 섞어 엮어냈다. 몰래 찍은 빈 강당 영상에 각기 다른 대표적인 의견을 내레이션으로 입혀 재현해낸 것이다. 이 장면은 ‘다큐는 객관적인 현실의 기록’이라는 명제를 깨트리면서 ‘명성…’과 김감독의 명성을 높여 주었다. 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운파상을 받았고, 서울인권영화제와 이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받았다. 99년 ‘또 하나의 세상’, 2001년 ‘한사람’을 발표한 김감독은 올해 ‘송환’으로 한국 독립 다큐의 역사를 또다시 썼다. 전세계 독립영화의 메카로 손꼽히는 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받은 것이다. 한국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건 ‘송환’이 처음이다. ‘송환’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출감 이후 삶을 11년에 걸쳐 뒤쫓은 분단 상처의 연대기이다. 김감독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삶을 기록하면서 그들의 가치관과 주변인들의 각기 다른 시선,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의견을 자신의 음성으로 담아냈다. 다큐의 외연을 넓혔고, 냉전의 역사에 천착한 사회물이자 개인의 실존에 대해 물은 드라마로 깊은 울림을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감독은 다큐와 우연히 인연을 맺었다. 우연히 시작하게 됐지만 그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19년째 외길을 파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늘의 점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서강대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복무를 마친 김감독은 무작정 이장호 감독을 찾아가 ‘바보선언’ 연출부 막내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어 정지영·하명중·장선우·선우완 감독의 연출부로 지냈다. 당시 소득이 시원찮았던 연출부원들은 비디오 카메라로 결혼식을 찍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김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날 재판 증거용으로 강제철거 장면을 하루만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찍고 돌아와 보니 소리 녹음이 안돼 있었다. 다음날 다시 찍으러 갔는데 마침 강제철거반이 들이닥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그 날의 전쟁이 끝난 뒤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어 하루만 자고 가자고 한 것이 3년으로 연장됐다.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편집한 작품이 ‘상계동…’. 푸른영상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상계동…’은 또 ‘명성…’을 낳은 산모가 됐다. 강제철거당한 상계동 주민들은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고, 그곳으로 6·10항쟁 주역들이 몰려들었으며, 철거민들은 자연스레 이들을 도왔고, 그 6일 간을 기록한 ‘명성…’이 탄생한 것이다. ‘송환’도 그 연장선에 있는 운명의 산물이다. 상계동의 영향으로 김감독은 천주교 도시빈민회에 들어갔고, 92년 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송경용 신부의 부탁으로 30년만에 출소하는 비전향장기수 조창손씨 등을 만나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김감독이 신접살림을 차린 봉천동 산동네로 훗날 조씨가 이사를 왔고, 만남은 조씨가 2000년 9월 북송될 때까지 이어졌다. 김감독은 그와 그 일행의 일상을 500여개의 테이프에 담았다. 800시간이 넘는 분량이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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