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전무 겸 편집인 박명훈(69.신방)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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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3-11-18 09:11 조회17,6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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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도 하이테크 발달에 맞추는 노력을 해야"
문득 경향신문을 펼쳐보니 사설이 실린 '오피니언'란에 경향신문 각 부서를 안내하는 일종의 조직도표가 실려 있다. '젊고 강한 신문, 경향신문'이라는 제목 아래 대표이사.발행인 그리고 그 옆에 편집인 '박명훈'이라는 이름 석자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의 편집인이라면 사장 바로 아래서 신문 만드는 일과 경영을 책임지는 3명의 임원(전무) 중 한 사람이다. 경향신문은 최근 IMF 이후 두 번 째로 경영혁신을 위해 삼성그룹에서 조영상 사장을 공채로 뽑고 신문사 조직을 과감하게 정비했다. 조 사장은 신문사에 민간기업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임원의 실적과 업적을 평가하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인사 조직을 위해 신문 만드는 일의 핵심적인 '편집인' 자리에 박명훈(69.신방) 동문을 승진 발령했다.
"언제든지 물러날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영체계가 완전히 달라진 만큼 제게 주어진 역할이나 권한보다 책임감이 더 막중하다고 봅니다."
누구보다 기자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박 동문이기에 현업에서 경영진으로 옮겼지만 후배 기자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 박동문에겐 이번 편집인으로의 승진도 의미가 있지만 항상 마음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경향신문이 지난 1999년 사원주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기자들이 직접 뽑은 편집국장 1호였다는 사실이다. IMF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 경향신문은 혹독한 시련기를 겪으면서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100% 사원주주회사로 전환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1천1백여 명의 직원이 6백 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렇게 신문사가 새로이 출범하면서 박 동문은 경제부장 겸 부국장으로 기용됐다. 그 후 경향신문은 젊은 기자들 중심으로 기존의 경향신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가치관에 의한 새로운 신문으로 거듭 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 기자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에서 초대 편집국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 당시 부국장 이상은 회사 규칙상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도 자동 등록이 돼 자연 편집국장 후보가 됐다. 처음에는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기자들의 직선에 의해 선출된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취소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직선 편집국장 1호가 됐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기자들이 그 목표를 이루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뜻으로 뽑았다고 생각한다."
- 임기 2년간 직선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나.
"족벌체제 신문사가 현재도 많지만 경향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문, 전문인이 자율적으로 만드는 신문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기자들이 이에 적극 동참해 한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들이 경향을 새롭게 만들었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 전문기자인 박 동문은 경향신문과 인연을 맺기 전인 76년부터 매일경제에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 그 당시에도 신문사에 발을 들여 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시절 경제관련 강의는 김덕중 교수의 '경제원론'뿐이었는데 매일경제가 경제지니 경제는 알아야겠는데 공부한 것은 없고,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을 찾아 경제 관련 월간지와 종합지들을 열심히 읽었는데 마침 시험에 '신한국 경제론'에 대해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종이가 모자랄 정도로 잘 쓸 수 있었다. 나중에 입사해보니 논문작성을 잘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매경'에서 5년 동안 일하다 경향신문에 스카우트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신문사에서 거의 30년 인생을 살아온 셈이다. '경향'에서도 경제통으로 경제기획원에 최연소 기자로 출입하는 등 경제관련 부처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경제전문기자가 됐다.
- 경제부 기자가 적성에 맞는다는 얘긴데 경제 기자와 일반 기자가 특성상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
"경제부 출신 기자들을 보면 대부분 합리적(reasonable)이고 논리적이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박 동문에게서는 상당히 부드럽고 인간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러다가 93년 부장이 되면서 생활과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생활과학부에서는 여성과 생활 관련 중심의 기사를 다루기 때문에 이 때 여성문제 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 후로는 논설위원, 논설 실장 등을 거치면서 최근까지 신문 만드는 일에 직접 관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편집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의 하루 일과가 전에 비해 조금 달라졌다.
- 하루 일과가 궁금한데.
"월요일의 경우 간부회의를 아침 6시40분에 시작한다.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조간신문을 체크하는 등 그 날의 주요 뉴스 아이템과 회사 주요 현안 등도 점검한다. 그 날의 주요 뉴스 아이템과 회사 주요 현안 등도 점검한다. 그 후 11시 30분쯤 편집국장, 논설실장과 회의를 열어 편집방향과 주요 안건 등에 대해 논의한다. 평상시에는 오후 2시 30분 사장과 함께 회의를 하면서 종합적인 검토를 하는데 이번 월요일은 그 시간에 노조와 임금협상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이 임원이 됐기 때문에 달라진 역할이다. 그리고 오후 6시 넘어 신문이 나오면 다시 한 번 신문을 점검하고 그때가 지나서야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신문쟁이가 이찌 회사 일과 후 긴장을 늦출 수 있겠는가. 언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 24시간 늘 깨어 있는 셈이다."
- 현역기자로 일할 떄와 임원으로 일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많은가.
"외국의 경우 '평생기자'라는 말이 있따. 임원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도 평생기자로 현역에서 일할 수 있는 풍투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 이제 신문 환경도 인터넷 매체 등장 등으로 예전에 비해 맣이 달라지고 있는데 신문이 살나남기 위한 대처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언론에서 신문이 절대적이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언론 환경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적이다. 그러나 신문도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지면의 다양화, 섹션화, 한글화, 가로쓰기 등을 시도하면서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매체 환경이 변한다 하더라도 신문 고유의 영역은 사라지지 않는다. 신문만이 할 수 있는 특정한 영역이 있다. 신문이 다매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디지탈 컨텐츠 개발 등 하이테크 발달에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서강 언론인상' 수상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설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부단한 노력과 주변 환경이 잘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 동문은 분명 축복받은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또 그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도 크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제정한 '서강 언론인상'을 박 동문에게 수여한 것도 박 동문이 자랑스런 언론인임을 보여준 것이리라.
많은 서강 출신 언론인들이 현재 언론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박 동문 같은 자랑스런 언론인이 앞으로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앞으로 그의 역할에 기대를 걸어 본다.
이선희(75 국문) 교통방송 보도방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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