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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300호 서강옛집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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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2-11-08 21:11 조회18,9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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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떠나도 마음은 항상 모교에” 題號 결정

 

모교 졸업생으로서의 긍지를 고취시키고 졸업생 상호간의 교류를 원활히 하며 모교 및 동문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간된 서강옛집이 지령 300호를 맞았다. 300호 발간을 기념하며 창간부터 현재까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60년대 

이번 호로 지령 300호를 맞게 된 서강옛집은 지난 1964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창간되었다. 레터지 형식의 2면에 걸쳐 첫 졸업생 62명의 취업 현황, 주소, 학교소식, 공지사항 등이 실렸던 서강옛집의 창간에는 당시 학생처장이었던 고 길로련 교수, 학생처 차장이었던 서정호 명예교수, 학생처 조교였던 안우규(60·영문) 동문의 공이 컸다. ‘서강옛집’이란 제호는 안우규 동문의 아이디어. 서강을 졸업한 사람들의 옛 고향집이라는 뜻으로 만든 이 제호는 졸업생들에게 몸은 떠났어도 마음은 항상 모교를 생각하게 하며 학창시절의 우정을 유지시키고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안우규 동문은 언젠가 서강옛집과의 대담에서 밝힌 바 있다. 이후 안 동문이 학업을 위해 유학을 떠나자 최일성(61·물리), 정경숙(62·사학) 동문이 뒤를 이었다. 

 

70년대 

창간 시부터 학생처장의 판공비로 제작·발송비를 충당했던 서강옛집은 졸업생 수 증가와 증면(1971년 3월 제47호부터 6면으로 증면, 1972년 7월 제62호부터 8면으로 증면)으로 인한 비용 증대로 더 이상 학생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재정 자립을 해야할 처지에 직면한다. 당시 동문회장이었던 박희윤 동문은 발송비 해결을 위해 재학생으로부터 동문회비를 받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 동문회에서는 2대 총장이었던 데일리 신부를 설득해 74년부터 재학생들에게 동문회비(종신회비)를 받게 된다. 74년을 기점으로 서강옛집 제작은 학생처에서 동문회로 이관되고 이에 따라 학생처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서강옛집은 재학생들의 동문회비와 동문들의 회비로 제작되는, 이른바 재정 자립을 하게 된 것이다.

 

김영천(60·경제) 회장이 취임하면서 동문회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게 되는 데 그 중 하나가 많은 소식을 담으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서강옛집을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취임 후 서강옛집을 격월간 타블로이드판 4면 신문형식으로 변형시키고 이어 1면에 화보를 게재해 보다 세련된 모습을 갖추게 한다. 당시 간사를 맡아 동문회 업무는 물론 서강옛집을 만들게 되었던 정광희(70·독문) 동문은 “신문제작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타블로이드판으로 판형이 변형되고 재정도 열악한 상황이라 서강타임스(현 서강학보) 기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1978년 다시 회장에 취임한 박희윤 동문은 서강옛집의 면모 쇄신을 위해 제95호(1978년 6월10일자)부터 제호 글자를 변경한다. 현재까지 사용 중인 ‘서강옛집’이란 題字는 서예반 출신인 하태규(77·경영) 동문이 쓴 것.

 

80년대

1980년대 들어 졸업생 수는 물론 재학생 수도 급증하고 동문회 사업이 확대되면서 서강옛집의 월간 발행 및 증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간사인 윤영희(74·신방) 동문을 도와 고성학(78·정외) 동문이 격월간 4면의 신문을 제작하면서 1년에 1회씩 8면 신문을 제작해 증면에 대비한다. 1982년 회장에 취임한 홍익찬(61·경제) 동문은 서강옛집 편집에 관련된 제반 내용을 검토하고 향후 서강옛집 증면, 증회 등에 대비, 실무진에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신문편집 소위원회(위원장:60·영문, 최창섭)를 구성한다. 1982년 6월부터 김미자(64·국문) 현 사무국장이 간사로 일하며 동문회 업무는 물론 서강옛집을 총괄하게 된다. 이때 편집을 도와준 고성학 동문의 뒤를 이어 서강옛집 편집을 도와주게 된 이상철(81·정외) 동문은 홍익찬 회장의 증면 계획에 따라 지령 122호(1983년 7월1일자)부터 격월간 8면으로 증면, 명실상부한 최고의 동문회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서강옛집 발간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홍익찬 회장은 1984년 유임되자 격월간 8면으로 증면한 지 1년6개월 만인 1985년 1월(제132호)부터 옵셋으로 월간 8면을 발간한다. 이와 함께 재정 확보를 위해 연회비를 서강옛집 발간보조비 명목으로 연 5천원씩 거출키로 하고 기존의 종신회비는 동문회 입회비로 변경하는 한편 동문들의 회비납부 편의를 위해 은행지로를 개설한다. 또 이때부터 대학원생을 편집기자로 임명, 장학금을 지급하며 안정적인 신문 발간을 꾀하게 되는데 우찬제(81·경제), 김상헌(82·정외), 장택원(81·신방) 동문이 이때 제작에 참여한 동문들이다. 

 

1986년 제15대 회장에 선출된 양호(62 경제) 동문은 서강옛집 담당 부회장으로 김경해 동문을 임명하고 서강옛집을 담당해줄 이사로 조명호(68 영문) 동문 등 10명을 임명하는 한편 서강옛집 명예기자제를 도입 각 직장, 동기회별로 인선작업 거쳐 129을 명예기자로 임명했다. 또 사무국 직원 곽은석(82 사회) 동문이 서강옛집 제작을 지원하게 했다. 이와 같은 조직에 힘입어 신문지질도 고급 모조지로 바꾸는 등 면모를 쇄신하게 되었다.

 

90년대

서강옛집 발간사에 있어 1990년은 큰 획을 긋는 해였다. 제16대 회장에 선출된 이우진(60 사학) 동문은 서강옛집을 월간 16면으로 증면하는 한편 표지를 컬러 인쇄로 면모 쇄신하면서 이를 위해 정지향(86 신방) 동문을 전담기자를 채용한다. 그 이전에는 재학생들이 편집장학금을 받으며 제작에 참여해 왔다. 1년여 서강옛집을 담당하던 정지향 동문이 사임하고 이어 1991년 6월 192호 부터 현재까지 정명숙(83 불문) 편집간사가 서강옛집을 맡아 지령 200호 발간을 거쳐 300호 발간을 맞기에 이른다.

 

이우진 회장은 증면에 따른 고정적인 재원 확보를 위해 기존의 발간보조비를 연회비(1만원)으로 하고 평생 구독료인 영구회비(10만원)를 신설했으며 편집내용 제고를 위해 각계 전문가로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기획에 참여시켰다. 이때 편집위원으로 정상용(68 신방) 이장규(69 경제) 신기섭(70 영문) 박철(70 독문) 김웅광(72 신방) 문애란(72 신방) 김미희(75 신방) 김명렬(78 사학) 고성학(78 정외) 박태광(81 불문) 동문이 참여했다.

 

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여자 동문들을 명예기자로 위촉, 인터뷰, 기사 취재 등 제작에 참여시킴으로써 여자 동문들이 서강옛집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내용이 다양해지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명예기자로 참여한 동문은 이선희(75 국문) 윤인숙(76 영문) 임미숙(83 독문) 심현미(83 사학) 도지원(84 물리) 함희경(86 국문) 동문으로 이선희 동문은 최근까지 편집위원으로 서강옛집과 인연을 맺고 있다.

 

1992년 3월 17일자로 지령 200호를 맞이한 서강옛집은 이제 월간 16면 발간이 정착되었으며 1996년 4월 1일 부터는 보다 맣은 동문소식과 정보교류를 위해 홈페이지를 개설, 서강옛집이 발간되기 전이라도 동문들의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하고 경조사나 구인 구직, 의견 등을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도록 하여 서강옛집의 기능을 확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시일이 지난 서강옛집도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기간 동안 월간 16면 정착을 위해 수고했던 편집위원은 김경해 편집인을 비롯해 신기섭(70 영문) 이병도(72 신방) 이선희(75 국문) 김미희(75 신방) 이근(77 경제) 김흥식(77 경영) 배성례(78 영문) 심동철(78 정외) 박태광(81 불문) 오세제(81 철학) 조정진(82 국문) 동문이 있다.

 

1998년 선출된 김경해 동문회장은 언론인 출신답게 편집위원제도를 정착시켜 서강옛집 제작에 적극 활용했다. 김경해 회장 재임기간 동안 서강옛집의 필진 강화 및 내용의 내실화를 위해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이기한(67 철학) 신기섭(70 영문) 동문을 비롯 이주호(72 무역) 이상현(73 정외) 이선희(75 국문) 강순옥(78 국문) 정상영(82 불문) 조정진(82 국문) 동문이 있으며, 송창기(72 신방) 송영만(74 정외) 이상룡(74 정외) 이선희(75 국문) 배성례(78 영문) 김미경(79 국문) 허병두(81 국문) 신윤석(81 영문) 박태광(81 불문) 조정진(82 국문) 동문이 최근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이외에도 박주필(83 정외) 임현옥(85 불문) 류지상(85 사학) 한성원(86 경영) 황호곤(87 철학) 김경일(88 신방) 조광현(88 경제) 임명수(89 철학) 오경래(89 경영) 장현석(89 경영) 김은하(90 국문) 권경률(90 사학) 박철우(90 경영) 장영권(91 사학) 황성범(92 국문) 김경애(92 물리) 김주동(93 신방) 조병찬(95 국문) 김영설(95 컴퓨터) 김희선(96 신방) 김형진(97 국문) 한미옥(97 신방) 동문이 재학시절 학생 편집기자로 모교 소식 취재와 동문 인터뷰, 신문 편집에 참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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