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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영희(71 영문) 10주기 #1.여전히 제 안에 살아 계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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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2 10:04 조회20,7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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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장영희(1952~2009) 동문(71 영문). 영문학자, 수필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감동시킨 수필로도 유명했다. 그런 장 동문의 저서들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당연한 일. 올해 2019년으로 장영희 동문의 10주기(週忌)가 됐다.

 

그 누구보다 서강을 사랑했고 노고 언덕을 아꼈던 장 동문을 각별히 기억하는 많은 동문들이 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한용운의 시구처럼, 10주기가 되었어도 장 동문을 기리는 많은 동문들의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이에 서강옛집은 장영희 동문 추모특집을 마련했다.

 

왕선택(84 영문), 한정아(88 영문), 정원식(92 영문), 이미현(96 사학), 이남희(98 영문) 동문이 장영희 동문을 추억하는 글을 싣는다. 실린 글들은 ‘장영희 교수 추모 문집, 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라도 봄’에도 수록될 예정이다. 옥고(玉稿)의 전재(全載)를 허락해주신 동문들에게 감사드린다. Gone but Not Forgotten. Hopefully. 장영희 동문의 안식년 때, 연구실 문에 붙어 있던 글귀다. 

 

- 표정훈(88 철학) 서강옛집 편집인

  

여전히 제 안에 살아 계신 선생님 

 

선생님, 왕선택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잘 아시겠지만, 제 나이나 학번은 헷갈리시지요? 영문과 84학번에, 65년생이고, 중간에 군대 갔다가 1989년 2월에 복학했고, 그해 <고급 영작문> 과목을 들으면서, 선생님께 처음 인사드렸습니다.

 

얼마 전 선생님 10주기 행사로 추모의 글을 모은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처음에는 약간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YTN에서 통일외교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하필 원고 마감하는 날이 초대형 뉴스인 북미 정상회담 직후로 잡혀 있는 거예요.

 

즉, 베트남 하노이로 출장을 가서, 1주일 넘게 뉴스 특보를 진행하고 돌아온 직후에 편지를 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님 돌아가신 지 10주년이고,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는 의미를 갖는 행사인데, 제가 빠지면 선생님이 섭섭해 하실 거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배운 대로, 대책도 없이 일단, 글을 쓰겠다고 덜컥 약속을 했습니다.

 

하여간 회사 동료들과 함께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담당하는 현장 방송 일정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갑자기 베트남 정부 당국이 외국 방송사 옥외 중계방송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선생님께 편지를 쓸 수 있는 천금 같은 시간을 얻게 됐습니다.

 

그래서 글을 좀 써보려고 좌정을 했는데, 비핵화나 상응 조치 등등에 총력 집중하던 상황이어서, 다른 생각이 나지를 않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갑자기,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선생님께 저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여쭤 보고, 선생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상황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면 돼’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보다도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 것이 대박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는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전에 저를 부르시던 날카로운 목소리, “얘, 선택아!” 이 말이 다시 울렸고, 이 세상 온갖 고통과 슬픔을 경험했으면서도, 도리어 경쾌하게 빛나는 눈빛과 온 세상을 품을 듯 화사하며, 살며시 부끄러운 듯 해맑은 미소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해 깔끔하고 차분하게 정리하신 지혜의 말씀도 모두 남아 있고, 날이 갈수록 의미와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절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 중에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도 없다”는 말씀도 있네요. 제 마음에 선생님은 좋은 추억으로 살아 계시니 투자를 정말 잘 하셨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께 저는 어떤 존재였는지도 궁금해지네요. 선생님은 인기가 너무 많아서, 수제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줄잡아도 500명은 넘을 거예요. 저도 수제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 그거 알고 계셨나요?

 

저도 때가 되면 선생님 계신 곳으로 가게 될 텐데, 그때 여쭤볼 테니까, 예리하고 직설적으로만 답하시지 말고, 친절과 사랑도 섞어서 답변해 주세요.

 

벌써 선생님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얘, 너는 남자 애가 쓸데없이 그런 거에 관심을 갖고 그러니?” 하시겠지요?

 

한마디만 더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선생님, 제 안에 살아 계시기는 한데요, 그래도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하노이에서 수제자 선택 올림

 

왕선택(84 영문) YTN 기자


* 글 목록

#1.여전히 제 안에 살아 계신 선생님 : 왕선택(84 영문) YTN 기자

#2.내 인생의 나침반 : 한정아(88 영문) 번역가

#3.문학의 힘을 보여주신 선생님 : 정원식(92 영문) 경향신문 기자

#4.늦된 제자의 고백 : 이미현(96 사학) 프리랜서 에디터

#5.‘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신 ‘나의 선생님’ : 이남희(98 영문) 채널A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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