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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서강인 #1 이지상(78 정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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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0 17:01 조회26,4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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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말만으로도 가슴 벅차 오른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 낯선 곳을 찾는 여행은 늘 우리를 흥분시킨다. 그런 여행이 곧 삶인 동문들이 있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동문들이 아니라 여행 자체가 곧 업이요 삶인 동문들이다. 서강 출신 대표적인 여행가 네 명에게 여행에 빠져든 계기, 과거와 현재 활동, 인상적인 여행지, 여행 노하우나 원칙 등을 물어봤다. 직접 글을 써서 보내주신 네 분 동문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 표정훈(88 철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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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느긋하게, 늘 관찰하고 배우며  

우리나라 ‘배낭여행 1세대’ 이지상 동문

활발한 저술 활동, 여행작가 1세대이기도

이지상(78 정외)

 

어린 시절 꿈을 위해 직장 그만 두고 나선 여행길 

어린 시절부터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고모네 집에 갔다 여행가 김찬삼 선생의 여행기를 보고 ‘나도 이렇게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되었지요. 그 후 계속 꿈을 꾸다가 대학에 들어와 떠날 기회를 보았지만 1970년대, 80년대는 여권을 얻기 힘들어서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진 1980년대 후반에 비로소 나갈 수 있었는데, 그때는 직장에 다니던 중이라 결국,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회사가 항공 회사라 휴가로 여행 떠나기는 좋은 환경이었지만, 저는 그런 여행보다 긴 방랑 같은 여행을 원했기에 사표를 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약 30년 동안 여행하고, 글 쓰고, 사진 찍는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어린시절의 꿈 때문이었지요. 직장을 그만 둘 때는 고민도 많았지만, 이번 생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길에 들어선 후, 거의 1년에 해당하는 긴 여행, 혹은 몇 개월씩 되는 여행을 수없이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신문, 잡지에 글도 쓰고, 방송에 출연하여 여행 이야기도 들려주고, 기업체,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행기, 여행 에세이 등을 24권 냈고, 계속 책과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의 인도, 매력적인 터키 

흔히 저에게 어디가 가장 인상적이냐고 물으면 인도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인도는 총 7차례에 걸쳐서 약 1년 반의 세월을 여행했는데, 수 천 년 전의 관습, 종교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독특한 곳입니다. 물론, 요즘 와서 치안이 안 좋은 상황도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장 즐거웠던 곳은 터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기독교, 이슬람교의 유적지가 함께 있으며, 한국인을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고 대접도 잘해주는 터키는 먹을 것, 볼 것이 풍부한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그 외에 행복의 나라로 알려진 부탄, 중국의 실크로드, 유럽의 체코, 뉴질랜드, 아프리카의 대초원, 겨울 시베리아 횡단 등도 생각이 나네요.

 

또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도 대단하고, 타이완, 베트남, 태국 등도 휴식 취하기가 좋은 곳이었습니다. 사실 어디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자기와 성향이 잘 맞는 여행지, 혹은 지금 원하는 여행지가 좋은 여행지 같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곳이 좋은 곳이 아니라,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을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누리는 ‘익명의 자유’ 

저에게 여행의 원칙 같은 게 굳이 있다면 ‘천천히’입니다. 처음 여행 갔을 때는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바쁘게 다녔는데 너무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 같고, 바쁜 일상의 반복이 되는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천천히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매스컴, 인터넷을 통해서 너무도 많은 곳의 이미지가 잘 알려져 있기에, 그런 것보다는 천천히 다니면서 저 나름대로 관찰하고 음미하는 시간을 즐깁니다. 문화든, 사람이든, 풍경이든, 음식이든 천천히 다니며 음미하면 여행이 풍요로워집니다.

 

또한 처음에는 유명한 관광지, 오지 등을 많이 다녔는데 이제는 가까운 대도시도 많이 갑니다. 대도시 속에서 누리는 ‘익명의 자유’가 저를 즐겁게 해줍니다. 요즘은 볼거리, 먹을 것보다도 낯선 사람, 낯선 문화 속을 자유롭게 거니는 익명의 자유가 제 여행의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겸손한 태도, 느긋한 자세, 관찰하고 배우는 태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지금까지 여행문화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도전, 개척, 빠르게 등의 자세를 갖고 여행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급하게 여행하고, 다른 문화권을 관찰하는 여유가 없었지요. 그 다음에는 한 곳에 머물면서 즐기는 여행이 한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놀고, 휴식을 취하는 거지요. 세상이 바쁘다 보니, 여행 나와서 즐기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도해서 방탕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못 사는 나라에서 돈 좀 있다고 잘난 체 하고, 현지인들 깔보고, 또 향락을 즐기는 문화가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요즘은 배움, 성찰에 의미를 두는 여행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지 문화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며 즐거움을 누리는 거지요. 

 

여행 문화도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고 또 성장하는데, 어딜 가든 현지인들의 살아가는 방식, 관습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 기준, 우리 기준을 갖고 함부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눈치 보면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자들은 현지인들에게 매우 성가신 존재가 됩니다. 이미 관광객 피로증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행자들이 겸손한 손님으로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이드북과 인터넷 정보는 당연히 이용해야 하지만 너무 의존하면, 재미없는 여행이 됩니다. 누구나 다 가는 관광지, 맛집, 텔레비전에 나온 곳에 가서, 인증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되면 여행이 바쁘고 피곤하게 됩니다. 정보를 활용하되, 자기 스타일대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바람직한 여행 문화를 정리한다면 겸손한 여행 태도, 천천히 느긋하게 다니며, 관찰하고 배우는 태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책에 파묻혔던 로욜라도서관의 추억 

언덕길이 가장 생각납니다. 저녁나절 언덕길을 내려오며 황혼 무렵의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감정이 솟구쳤지요. R관에서 낡은 냄비에 라면 끓여 먹던 기억도 엊그제 같고, P관이라 불렀던 왕자 다방도 생각납니다. 1980년대 초반 복학하고 나서 하굣길에 늦은 수업이 끝나는 날이면, 매주 친구와 함께 들러서 500원 짜리 두부 김치에 500원 짜리 막걸리 한 주전자를 마시던 기억이 그립네요.

 

잉어집, 일미집 등인데 오래 전에 없어진 곳이지요. 물론, 가장 뿌듯한 추억이 서린 곳은 로욜라 도서관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의 로욜라 도서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대학 도서관이었지요. 책 속에 파묻혀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했습니다.

 

잠시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행

해외든, 국내든, 동네든 여행은 즐겁습니다. 단, 현실을 살짝 이탈하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이 각박하고 피곤할수록, 현실을 이탈하지 못하면 만족도는 떨어집니다. 여행이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부지런히,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라면 피곤해지지요.

 

모든 것 다 잊고, 잠시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 그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단지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세계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를 가지면 먼 해외가 아니라, 국내의 여행지, 서울, 동네 골목길조차 흥미진진한 여행길이 됩니다.

 

이지상 동문 주요 저서 

『기억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될까봐』(RHK, 2018) 

『여행작가 수업』(엔트리, 2015) 

『도시탐독』(RHK, 2013)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중앙books, 2012)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북하우스, 2007) 

『황금소로에서 길을 잃다』(북하우스, 2004) 

『실크로드 여행』(북하우스, 2003) 

『슬픈 인도』(북하우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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