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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산을 아십니까 #2. 한국천주교 ‘순교 성지(聖地)’ 노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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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6-22 09:40 조회17,3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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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브리엘관 앞 순교현양비 건립

새남터 형장 가까워 많은 순교자들 묻혀

 

앵베르 주교, 모방·샤스탕 신부가 묻혔던 노고산

모교 가브리엘관 앞 소나무밭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를 기리는 세 개의 순교현양비가 서있다. 당시 새남터에서 순교한 뒤 버려진 세 성인(聖人)의 유해를 교우들이 수습하여 노고산에 안장하였다. 4년 뒤 삼성산(현 관악구 신림동)으로 옮겨졌다가 1901년 명동성당에 안장됐다.

 

순교현양비는 조각가 이춘만(크리스티나)이 제작했다. 각각 가로 1m, 세로 1.5~2m 규모다. 앞면에 각 성인의 얼굴 동판과 함께 약력이 기록돼 있다. 기도할 수 있도록 돌로 만든 의자 12개도 주변에 조성돼 있다. 2009년 6월 15일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순교 성인 3인 현양비 축성식’이 거행됐다. 건립 기금은 환주복지재단 이관진(베드로·2015년 작고) 이사장이 기탁했으며 비문은 김남조(마리아 막달레나) 시인이 썼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이 곳은 축성된 터전이니 주님의 빛 사제 프랑스사람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세 분은 조선교회 초기의 피바람 속에 입국하여 영원한 생명의 참 진리를 밝히다가 기해박해 때 순교하여 여기 노고산 자락에 묻혔었다. 그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자 이 부지에 서강대학교가 설립되어 인재를 배출해 오고 있으며 위 세 분은 1984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진리의 전파와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학의 소명을 서강대학교는 숙연히 지켜갈 것이며 세 분 성인은 기리 우리를 비추고 가호하리라.’

 

1866년 순교한 두 성인 전장운 요한과 정의배 마르코의 유해도 노고산에 안장되는 등, 많은 순교자들이 노고산에 묻혔다. 노고산은 새남터 형장과 가까운 이유로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매장됐던 순교 사적지이기도 하다. 그 전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천주교 순교 역사 속 노고산

한국 교회가 처음 맞이한 사제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후 30년만인 1831년, 조선 교구는 중국 북경 교구에서 독립해 명실 공히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836년과 1837년 사이에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한다. 이들은 입국 후 1년 만에 신자가 9천여 명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얻는다. 

 

사제 양성을 위해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등 세 소년을 마카오로 유학 보낸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앵베르 주교는 선교사 입국이 알려져 교우들에 대한 탄압이 가열되자 수원 어느 교우집에 몸을 숨겼고, 다른 두 신부에게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당부하지만 여의치 않아 단념하고 임지로 돌려보낸다. 결국 한 배교자로 인해 거처가 발각됐다. 사제들은 새남터 형장으로 끌려와 죽임 당했다. 당시 주교의 나이 43세,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는 35세였다.

 

시신은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었다. 20여일 만에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몇몇 교우들이 시신을 수습해 일단 노고산에 안장하였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교우들 중 하나인 박 바오로는 4년 뒤 자기 집안 선산인 삼성산(三聖山, 현 관악구 신림동)에 유해를 옮겨 모시고, 후에 그 사실을 아들 박순집(베드로)에게 알려 주었다.

 

전장운·정의배·이호영·최경환 등도 노고산에 묻혀

박순집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볼리외·도리·프티니콜라·푸르티에 신부, 우세영(알렉시오)의 시신을 다른 몇몇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새남터 부근에 임시 매장했다가 왜고개(현 국군중앙 주교좌성당)로 옮겨 모셨다.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요한)과 최형(베드로)의 시신도 왜고개에 안장했다.

 

순교자들의 시복 수속이 진행되던 1901년 10월 21일, 노고산에 4년간 매장되었다가 삼성산으로 옮겨 모신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다가 같은 해 11월 2일 명동 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되었다. 1866년 3월 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한 전장운(요한), 3월 11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정의배(마르코)의 시신은 며칠 후 부인들이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거두어 노고산에 안장했다고 전해진다.

 

1838년 11월 24일 형조 옥에서 병사한 이호영(베드로)의 시신도 노고산에 묻혔다가 절두산에 모셔졌다. 1839년 9월 12일 포도청 옥에서 숨을 거둔 최경환(일명 최영환·프란치스코)의 시신도 아들 최의정(야고보) 등이 수습해 노고산 근처에 가매장했다가 이장했고 1930년 5월 명동성당 지하묘지로, 1967년에는 절두산 순교성지로 옮겨졌다. 최경환은 한국천주교 사상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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