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서강’의 주역들 : 서강영화공동체, 서강연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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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1-09 09:40 조회17,1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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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과 영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서강에 연극영화학과는 물론 예술 관련 전공이 없었던 데다가, 전반적인 교풍이나 학사관리가 엄정한 편이어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끼를 발산해야 하는 예술 분야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강 출신이 없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계에서 크게 활약하는 동문들이 많다.
이번 특집에서는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주요 동문들을 연기․제작․감독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많은 동문들이 있으며 연기․제작․감독 분야 외에 프로듀싱․마케팅․홍보․시나리오․영화 음악, 기타 영화 산업 각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동문들이 있다. 예컨대 김준석(93 철학) 동문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과속스캔들’, ‘마파도’, ‘미생’, ‘타짜’ 외에 문자 그대로 ‘수많은’ 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제46회, 제47회 대종상영화제 음악상, 제17회 춘사대상영화제 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예술 관련 전공 유무와 영화계 활약이 무관하다는 것은 모교 철학과가 잘 보여준다. 김준석 동문을 비롯하여 박찬욱(82 철학) 감독, ‘설국열차’로 유명한 제작사 오퍼스픽쳐스 이태헌(86 철학) 대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판타지 영화를 만든 전계수(90 철학) 감독 등이 모두 철학과 출신.
‘시네마 서강’의 토대, 서강영화공동체와 서강연극회
‘시네마 서강’을 말하려 한다면 서강영화공동체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 깊은 관심을 지닌 학생들이 모여 1985년에 결성됐다. 박찬욱 감독이 초창기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달랐다. 1980년대 대학가 영화 동아리들은 저항과 사회변혁의 수단 차원에서 영화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영화공동체는 영화 예술의 자율성에 좀 더 주목했다.
모교의 커뮤니케이션 센터가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커뮤니케이션 센터는 당시만 하더라도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외국 영화 자료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던 것. 다른 학교 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또 영화 관련 외국 도서를 읽기 위해 영화공동체의 문을 두드리는 일도 흔했다. 지금도 서강영화공동체는 정기적으로 영화 이론․비평 스터디를 진행하고 방학 때는 단편영화제작 워크숍을 열며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영화공동체에서 활동한 동문들 가운데 박찬욱(82 철학), 김용태(82 신방), 이정향(83 불문), 윤태용(83 경영), 임경수(86 경영), 최동훈(90 국문) 감독 등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소영(80 영문),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배병호(82 신방), 영화와 대중문화에 조예가 깊은 변호사로 유명하며 인투더필름 대표를 맡기도 한 임상혁(88 영문) 동문 등도 있다.
서강연극회도 빼놓을 수 없는 ‘시네마 서강’의 기반이다. 서강연극회는 1960년 12월 ‘Hangs Over The Head’를 시작으로, 1965년에는 판소리를 영어로 각색한 국내 최초 본격 뮤지컬 ‘Chun yang song’을 선보였다. 1969년 국립극장에서 상연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명동에서 장사진을 이룰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서강연극회는 창립 때부터 당시 우리 연극계의 신파조 경향을 배격하고 독창적 연극 세계를 창출해나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1년에 여섯 차례씩 공연할 정도였다. 관객 호응도 대단해서 300~400여 명 학생들이 매번 객석을 꽉 메우곤 하였다. 서강 출신 영화배우 시대의 막을 연 문성근(72 무역), 정한용(74 경제) 동문 등이 연극회에서 활동했으며 우리나라 연극계의 주축을 이룬 탁월한 연출가들을 다수 배출했다.
<서강연극회가 1960년 12월 선보인 ‘Hangs Over The Head’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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