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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장상훈(87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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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6-16 10:04 조회16,5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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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에 현혹된 장상훈(87 사학)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학예연구관

박물관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다. 마지못해 끌려간 견학일 수도 있고, 흥미진진한 탐험일 수도 있고,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있다. 인터뷰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니 전시 석 달 만에 관람객 30만 명을 돌파했다는 이집트보물전이 한창이었다. 장상훈(87 사학) 전시과장은 봄빛이 따사로운 박물관 마당으로 나와 취재진을 반겼다.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한 장 동문은 유물관리부, 고고부 등을 거쳐 현재는 전시과장으로서 굵직한 전시 기획 및 진행을 총괄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행운이죠(웃음). 어릴 때부터 박물관이 좋았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매력적이라 느꼈고, 중학생 무렵부터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중학생 때 어머니와 경복궁 안 향원정 뒤편에 있던 박물관 방문 기억이 오래 남아요. 지금은 없어진 곳인데 민속박물관의 전신이라 보면 돼요. 고등학생이 되니 꿈은 더 분명해졌어요. 대학 진학할 때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점수가 모자랐어요. 그다음으로 서강대 사학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했답니다. 졸업 이후 고고학 분야로 시험을 봐서 1995년 박물관 에 들어왔죠.

지금 하는 업무를 소개해주세요.
전시 업무를 총괄한다고 보면 돼요. 제 연구 분야인 지도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데,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박물관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나다’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중앙박물관에 대동여지도 목판이 남아 있답니다. 원래 60개 정도로 추정이 되는데 현재 12개가 남아 있고, 그중 11개가 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어요. 그걸 온전히 소개한 적이 없었는데 2007년에 해냈어요. 흥행하고는 인연이 없어서 아쉬웠죠.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는 건 외국 문화재 전시예요.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죠.

모교에서 한국고대사로 석사와 박사과정에 임했는데 고지도를 연구한다는 게 낯섭니다.
박물관에서 역사 전공자를 뽑지 않았어요. 일단 박물관에 들어가야 하니까 고대사 공부를 한 거죠. 전략적인 선택이었죠(웃음). 입사하면서부터 고지도 연구에 대한 생각이 있었어요. 취미가 지도 보기였으니까요. 2005년 중앙박물관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당시 통사실을 운영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해서 지도나 금석문 같은 컬렉션 위주의 전시가 열렸기에 고지도실이 있었어요. 고지도실을 맡겠다고 자원했고, 그때부터 계속 고지도만 연구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초등학생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회과부도를 펼쳐놓고 습자지에 지도를 베껴 그리곤 했어요. 전조가 있었던 셈이죠.

개인 이메일 주소도 ‘jido’네요. 고지도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이메일 주소를 ‘map’이라고 했어야했는데 생각이 짧았어요(웃음). 학부 시절 서광회를 잠깐 했었어요. 사진은 진실만을 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척 주관적인 기록물이에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지도도 똑같아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 보고 싶은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담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정체성과 직결돼요. 내가 누구인지, 남에게 내가 어떻게 비쳤으면 좋겠는지 지도에 담겨요. 지도는 초상화와도 같다고 생각해요.

지도에는 만든 사람들이 뿌리내려 살아온 고장의 산줄기와 물줄기, 그들이 일구어온 고을과 마을이 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담겨 있어요. 지도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을 이해합니다. 고지도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접할 수 있는 셈이죠. 산줄기 체계는 한국 고지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한국의 모든 지도는 풍수지리설을 무척이나 중요시했어요. 산줄기가 영적인 힘의 발전소라고 믿었거든요. 대동여지도를 보면 백두산이 무척 크게 그려져 있어요. 당시 사람들은 어디서든 출발해도 백두산에 갈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제가 번역한 ‘한국 고지도의 역사’라는 책의 저자인 미국 콜롬비아대 개리 레드야드 교수는 “대동여지도를 보고 백두산을 찾아간다면 웅덩이를 만나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죠.

영국 레스터대학에서 국립박물관사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네요.
산만하다 그럴까, 제가 여러 분야에 좀 관심이 많아요(웃음). 국립박물관이 걸어온 궤적도 관심사 중 하나에요. 역사학도들은 제도나 기관, 사람을 출발점부터 더듬어 보는 습관이 있잖아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이에요. 박물관사도 정체성과 이어져요. 식민 지배를 받다가 신생국가가 생겼어요. 내가 누군지 스스로 찾고 인식해서 자기 문화적 정체성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국가기관으로 박물관이 설립된 거죠.

2011년 영국에 가서 1년 10개월 정도 있었고, 디스턴스러닝(distance learning) 과정으로 논문 지도를 받았어요. 직장인에게 1년 10개월 동안 공부만 하라니 꿈같은 일이죠. 공부에 목말라 있던 터에 원없이 공부했어요. 지도 교수인 사이먼 넬은 국립박물관사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2015년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논문 제목이 ‘민족의 표상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A representation of the nationhoo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이에요. 영국 학계 입장에서는 극동의 포스트 콜로니얼 국가가 어떻게 국립박물관을 활용했는가 하는 구체적인 케이스 스터디 자료가 생긴거죠.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에서 민족주의가 다시 부흥하고 있잖아요. 가려져 있는 민족성이 발현되고 이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보니 동아시아의 궤적은 시사점이 있는 셈이죠.

국립중앙박물관 서강동문 연중관람 행사가 벌써 7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꾸준하게 이어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문이어서라기보다 박물관에 오는 관람객을 확보하는 일이잖아요. 동문이라는 인연과 동문을 위한 해설이라는 계기가 있으니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중앙박물관에 근무하는 다섯 명의 동문이 돌아가면서 해설을 하는데, 올해는 지방 분관에 내려가 있는 동문이 많아서 저와 서윤희(87 영문) 동문이 맡고 있어요. 상설전시회 위주로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특별전이 많아서 특별전으로 유도하려고 해요.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사학과 동문회 고문인 최병찬(73 사학) 선배님 덕분에 지속될 수 있는 거죠. 모든 행사를 항상 챙기면서 꼭 나오시고, 추첨을 통한 선물까지 나눠 주시니 동문회에서 상 드려야 합니다(웃음).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올해 좋은 특별전이 많아요. 사우디아라비아 교류 전시가 있고, 이탈리아 복식과 관련된 단추 전시가 있고, 독일 드레스덴 계몽시대 군주들의 수집벽을 보여 주는 예술품 전시가 있고, 겨울에 프랑스 에르미타지 회화전시가 예정되어 있어요. 꼭 보러 오세요.

 


<2016년 5월 18일 열린 '서강가족을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의 초대' 행사에서 조선시대 고지도를 해설하는 장상훈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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