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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성(76.무역) 동문의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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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3-02-24 15:02 조회20,5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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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영어강사 은천성씨의 청빈·소박한 삶 2003/02/24(경향신문)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빌딩의 숲. 서울 테헤란 밸리 역삼역 부근의 ‘영어사랑 통역학원’이라는 간판이 매달린 5층짜리 건물은 마치 거인국 브롭딩나그의 왜소한 걸리버 같다. 통역대학원이나 번역대학원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꽤 이름난 이 학원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화려하고 깔끔한 보통의 학원과는 딴판이다. 조그마한 매점이 안내데스크를 대신하고, 구석에 자리한 인터넷실은 말이 좋아 실(室)이지 난방시설을 갖추지 못해 녹색포장을 둘러쳤다. 건물 5층의 ㄱ자형 대형 강의실에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시청각교재로 사용하는 대형 TV가 2대 놓인 외에 책상 너머로 야트막한 침대가 보인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10여년을 강남에 있는 어학원에서 ‘카리스마 짱’인 명강의로 유명한 원장 은천성씨(47)의 잠자리다. 하루 평균 10시간을 강의에 쏟아붓고 남는 시간에도 강의준비를 철저히 하다보니 잠잘 시간도, 출퇴근 시간도 아까워서 이렇게 살고 있단다. 그뿐이 아니다. 그가 건넨 명함은 빳빳한 종이명함 대신 이미 사용한 흔적이 있는 A4용지 이면지에 연락처를 인쇄해 자른 것. 그의 자리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킥보드에도 눈길이 간다. 운동이 되고 좁은 곳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친환경적이면서도 경제적이라 2년째 타고 있는 것이라 한다. 한 달에 수천 만원을 거뜬히 버는 은씨가 이런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은씨가 오늘날 영어강사가 된 데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그의 평생 화두가 큰 역할을 했다. 고교시절 ‘자신만을 위해 살지 말라’는 목사의 설교에 감화를 받은 은씨는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싶었다. ‘사업을 크게, 이왕이면 국제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서강대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언어공부는 무역업을 위한 기초투자인 셈이었다. 한데 본말이 전도돼 어학공부가 더 재밌었다. 대학시절 내내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에서 불어와 독일어를 배우고 토요일이면 토론클럽에 참가해 온종일 외국인들과 외국어로 대화했다. 그러는 틈틈이 보육원과 재활원 등지에 봉사활동을 나가면서 부의 재분배가 아니라 교육, 특히 아동교육에 있어서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전공교수로부터 “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느냐”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전공수업을 제외하고는 교육철학과 교육심리학 등 교육학 수업을 듣는 데 몰두했다.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그의 길은 장사꾼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시절 열심히 어학을 갈고 닦은 덕분에 군대에서 통역장교로, 어학처 영어교관으로 활동했다. “한데 가르치면서 보니 교육도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이 못되더라고요. 근본적으로 인간의 심성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은 인간을 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종교에 관심을 돌렸지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신앙을 실천하라’ 동시통역사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198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동시통역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올림픽 때 통번역사로 일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올림픽 직후 은씨는 미련없이 자신에게 수도자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쳐보기 위해 81년부터 인연을 맺고 있던 프랑스 ‘테제공동체’로 건너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유럽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지에서 몇개월씩 거주하며 국제행사 준비를 도왔다. “2년 남짓 머무르면서 깨달은 것은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수도자로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기에는 제 그릇이 크지 않다는 거였어요” 각자 있는 자리에서 신앙을 실천하라는 테제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는 한국에 돌아와 어학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강남 일대에서 꽤 잘 나가는 강사였던 그는 2년전 강사들에 대한 학원의 횡포와 학원생들을 위한 재투자에 인색한 모습을 보고서는 실망해 무리를 해가며 큰 돈을 대출, 지금의 건물을 마련하고 학원을 설립했다. 강의만 듣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한푼이 아쉬운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습실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섬세한 배려와 열의있는 지도 덕분에 학생들이 몰린다. 식사를 할 때는 밥을 남기지 않고 잔반은 따로 모아 나중에 식사할 때 먹는다는 그는 학생들에게 ‘짠돌이’ 혹은 다 비운다 해서 ‘다비선생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다 그렇게 살아서 제게는 이상할 것이 하등 없는데 사람들은 신기하게 보네요. 게다가 제3세계에서 몇 개월 생활하다보니 제가 있는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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