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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 60주년 박고영 신부] 생애 절반 서강과 함께 한 소중한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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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21 23:24 조회13,4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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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박고영입니다.”


이름만대면 가톨릭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이들이 알아보고 따뜻하게 맞이하는 박고영(토마스) 신부가 올해 회경축(사제 서품 60주년)을 맞았다. 92세 나이에 회경축을 맞이한 소감으로 박 신부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다”라며 “건강, 교육, 직장, 배경 등을 선물 받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며 음악까지 할 수 있기에 감개무량한 삶이다”라고 말했다.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박 신부는 부모가 모두 가톨릭 신자인 가정에서 4남 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셋째 형은 故박고안(프란치스코) 신부, 조카는 박의열(엘리사벳) 예수 수도회 수녀다. 유년 시절 경기도 안성에서 현재 기독교문화재로 지정된 구포동 성당을 다니며 성당이 운영하던 안법학교를 4학년까지 마친 뒤, 서울로 올라와 5년제 소신학교(小神學敎)인 동성상업학교(現동성고등학교)에 진학했다. 故김수환 추기경의 고교 4년 선배인 셈이다. 졸업 후 천주교 대신학교에 진학해 6년 과정 가운데 5년을 마치고, 돌연 예수회 문을 두드렸다. 공부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가 예수회원이 된 게 1941년의 일이다. 이후 2년 동안의 수련과정을 거쳐 죠치(上智)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박 신부의 왼쪽 팔목에 깊은 흉터가 있는데 이즈음 생긴 상처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히로시마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수련원 복도에서 청소하던 도중 폭발 충격으로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면서 파편이 날아왔다.

모교 개교와 더불어 철학 강의를 시작해서 1984년 정년퇴임해 명예교수로 남아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박 신부는 서강의 역사를 일궈왔다. 교육자로서 박 신부는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을 기르는 데 힘썼다”라며 “대학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사람을 만들어야 대학이지 단순히 기술과 지식만 가르쳐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신부는 “제자인 엄정식(60 철학) 철학과 명예교수가 해마다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챙겨오는데, 멀리 해외라도 갈 일이 생기면 미리 우편함에 넣어 둔다”라며 “내가 존경하는 제자”라고 말했다.

박 신부는 어쩌면 서강의 숨은 설립자인지도 모른다.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예수회원 故김태관, 故진성만 신부가 각각 벨기에와 프랑스로 신학공부를 하러 떠났을 때, 박 신부는 1947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으로 향했다. 박신부는 “로마에서 예수회 요한 얀센 총장 신부에게 틈만 나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부 선교활동 없이 직접 복음을 가지고 온 나라이므로 한국에 꼭 예수회가 세워져야한다’라고 건의했다”라며 “1949년 장면 박사가 대통령 특사로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교황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며 한국에 예수회가 설립되도록 함께 촉구했다”라고 말했다. 예수회는 진출한 나라에 가톨릭 신앙과 교육 이념을 토대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기에, 예수회 한국진출이 곧 서강대 설립의 기틀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박 신부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마다 모교를 방문해 맑은 날은 야외에서 테니스를 치고 비오는 날은 체육관에서 탁구를 친다. 1971년 로욜라도서관과 운동장 사이에 테니스 코트를 짓고 서강테니스부를 창단한 인공이기에 구력(球歷)만 40년이다. 힘이 달려서 스트로크는 무리고 슬라이스로만 경기하는데도 랠리가 제법 오래 이어진다. 술·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다보니 164㎝ 키에 항상 65㎏을 유지한다.

박 신부는 1967년 아퀴나스 합창단을 창단하고 작년까지 42년 동안 지휘를 맡아왔다. 그런데 올해 장상(신원식 예수회한국관구장)이 이제 그만 쉬시라”라고 해서 지휘봉을 한상우(74 철학) 동문에게 넘겨줘야 했다. 그런데 지휘하지 못하게 된 게 못내 아쉬웠던 지 박 신부는 지금도 3~4시간은 끄떡없이 지휘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 도중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쭉 폈다. 그래도 요즘은 아퀴나스 교회음악연구소에서 라틴어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지도하는 봉사에 열심이다. 이론, 성가, 오르간 등을 망라한 명강의다.

박 신부는 “남은 생은 하느님의 영광과 남을 위해 살겠다”라며 “앞으로 10년 계획이 있지만 언제든지 하느님이 부르시면 응답하겠다”라고 말했다.

글·사진=정범석(96 국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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