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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는 은사님 명강의⑧ 수학과 이흥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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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5-01-12 18:01 조회12,8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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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아라"

 

서강대학이 개교할 당시 전체 학과는 6개에 불과했다. 수학과는 그 중 하나다. 오래된 터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게 마련. 1992년 모교를 정년퇴임한 이흥천 명예교수는 그런 수학과가 착실하게 자리 잡도록 학과의 기틀을 잡은 분이다. 전설이 생길만 한 터를 만들고 쉽게 사라지지 않도록 분주히 닦았던 것이다. 

 

초창기인 1965년 모교에 부임한 이흥천 교수는 유능하다고 판단되면 학연과 연배를 고려하지 않고 초빙하여 교수진을 구성했다. 학생들이 어렵다 싶으면 몸소 집까지 찾아가 챙겨주는 열정을 보여줬다. 군인이 캠퍼스에 진주해 있던 70년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제자의 재능이 아까워 책을 쥐어주며 따로 공부를 시킨 일화도 있다. 그 학생은 결국 복교하여 서강을 졸업할 수 있었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지금은 모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이흥천 교수는 학생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 수업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며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제자들의 주례를 선 것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 어학당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찾아가 영어나 일어로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 이흥천 교수를 각별히 추억하는 충남대 수학과 이석훈 교수(72.수학)가 스승을 뵙고 사제지간의 회포를 풀었다. 이석훈 교수가 보는 이흥천 교수는 "수학과를 세우시는 데 확고한 비전을 갖고 과를 실질적으로 만드신 분, 오늘날까지 수학과에 가장 크게 기여하신 분"이다. 이석훈 교수는 또 이흥천 교수의 학문에 대해, "수학을 모든 학문의 기본으로 보시려 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데, 그런 선생님의 자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흥천 교수는 집합론에서 시작해 헤겔 철학에까지 연결시키는, 의욕으로 가득찬 학자다. 

 

이석훈 교수 : 건강은 어떠세요? 

이흥천 교수 :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일이 없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지요. 내가 워낙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지도 들고 배낭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인데요. 

 

이석훈 교수 : 근황은요?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셨잖아요? 

이흥천 교수 : 린의 <집합론>을 번역하는 데 공을 들였지요. 1990년 초판을 나오고 나서 꾸준히 교재로 사용됐는데, 작년에 개정판 작업을 했습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지요. 요즘은 괴델과 헤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석훈 교수 : 전에는 하이델베르그를 연구하셨지요. 

이흥천 교수 : 제가 원래 철학과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관념적인 것 같아 수학을 선택했지요. 나무로 비유하면, 가지에 잎사귀를 연구해도 평생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나는 나무의 뿌리에 관심을 가졌고, 그러다보니 논리학이나 집합론 등을 하게 됐고... 

 

이석훈 교수 : 철학은 아니더라도 본질을 찾아가는 건 마찬가지네요. 

이흥천 교수 : 헤겔 하면 변증법이 떠오르잖아요? 정.반.합이 반복되는 사고의 발전, 역사의 발전 논리를 전개한 것이죠. 헤겔이 죽고 딱 100년이 되던 해인 1931년, 괴델이 '불완전성의 정리'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어떠한 지식이든 체계가 세워진 지식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고, 그 체계 안에서는 참/거짓을 판명할 수 없는 명제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이는 내가 보기에 헤겔의 변증법을 괴델이 논리적.수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하와이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 괴델의 정리를 처음 접했는데, 그게 필생의 과제가 됐습니다. 

 

이석훈 교수 : 그런데 그런 본질적인 문제는 최근 약해졌습니다. 컴퓨터가 발전하는 데 따라, 수학과나 학생들의 관심도 기울고 있는데요... 

이흥천 교수 : 앞의 말을 덧붙이자면, 다윈의 진화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적자생존 이론에서는, 몇 세대가 지나면 다른 종이 생긴다는 것인데, 이는 헤겔 변증법을 다윈이 생물학적으로 접근한 것이고, 괴델과도 맥락이 닿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체계 속에서, 1940년대 말에 폰노이만은 '조만간 기계적으로 더욱 진화된 계산기가 출현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대로 실현됐습니다. 그런 접근도 필요한 거죠. 

 

이석훈 교수 : 공부 얘기만 하시네요. 다른 일도 많이 하셨을 텐데... 

이흥천 교수 : 서강대학의 고마운 점은 은퇴해도 강의 한 과목을 맡긴다는 건데, 은퇴 후 여러 해 동안 경영대학 학생들을 위한 대학수학 강의를 했지요. 이석훈 교수 : 제가 학과를 운영해 보니까, 요즘은 학생, 사회의 요구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선생님은 수학과를 만드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때의 꿈이랄까,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 성과는 어땠나요? 이흥천 교수 : 내가 서강에 온 게 1965년입니다. 대전대학에 2년 있다가,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까 하는 참이었는데, 서강에 오게 됐습니다. 당시 수학과의 송기선 박사가 나를 데일리 신부님께 소개했는데, 내일부터 일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는 미국 대학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나는 작심하기를, 서강대학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 했죠. 유능한 교수들을 모셔오기 시작했고, 늦더라도 제대로 가자는 생각에서 대학원도 천천히 설립했어요. 초창기에는 신부님들도 이과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셨고요.

 

이석훈 교수 : 지금 수학과의 모습을 보면 기쁘시겠어요.

이흥천 교수 : 그럼요. 전임교수가 열분이 넘고 연구도 활발하다고 하니, 아주 흐뭇하더라고요. 욕심 같아서는 교수가 한 서른명 정도 됐으면 좋겠지만, 지금 젊은 교수님들이 열심히 하시니까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이석훈 교수 : 향후 계획이랄까요, 앞으로의 과제로 삼고 계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흥천 교수 : 번역이든 연구든 한 2 - 3년 더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행을 좀 더 하고 싶네요. 난 ‘배낭여행’이라는 말이 없던 시절에 배낭을 매고 나갔습니다. 여행을 하고 넓은 세상을 보는 것이 우리에겐 큰 힘이 됩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에 초점 둔 강의 감명” 

내가 본 이흥천 선생님

 

이흥천 교수님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신 은사님이시다. 모교 개교 후 얼마 안되어 부임하신 뒤로, 힘써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모셔 오시고 뒷바라지하시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던 선생님의 노고가 밑거름이 되어, 모교 수학과는 한국의 어느 수학과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얻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대학교육협의회 평가에서 수학과가 최우수 평가를 받은 것도 이흥천 교수님을 비롯한 수학과 모든 교수님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라 볼 수 있다.

 

내 학부시절 기억 속에, 선생님의 강의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에 초점을 둔 학생 중심의 강의이자 굉장히 열성적인 강의였다. 3학년 때 수강한 추상대수학 시간,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시려고, 연습문제를 숙제로 내 주시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풀게 하셨다. 잘한 학생에게는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고, 방향이 조금 잘못되었을 때는 일일이 지적해주시고 이미 배운 내용이라도 다시 자상하게 설명해주시곤 하셨다. 이때 선생님께 받은 영향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나 스스로 또는 조교들에게 부탁하여서라도 연습문제 풀이 시간을 갖고 있으나, 모든 과목에 연습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으니 역시 제자가 스승을 따라가기란 어려운 것 같다. 또 4학년 수학교수법 강의 땐 학생들로 하여금 각자 내용을 정하여 한 시간 가량의 수업을 직접 해보게 하셨다. 강단에서 하는 강의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되고 떨렸었는데, 강의를 마치고 나니 선생님께서는 강의연습 중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말버릇 횟수까지 말씀해주시면서 꼼꼼히 살펴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때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신 교훈들은 지금까지도 생각나곤 한다.

 

선생님께서는 학문이나 강의에 있어서 뿐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즐기시고 열정적으로 사시는 것 같다. 은퇴하시기 전과 그 후에도, 길게는 한달 씩 남미, 인도, 유럽, 동남아 등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자주 하셨다. 여행 중의 즐거운 일들과 고생하셨던 얘기들을 후일담으로 들려주시곤 하셨는데,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여행가방과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리시고도 일정대로 여행을 마치신 일, 인도여행에서 있었던 위험한 일들, 네팔에서 사정이 어려운 한 소녀의 후원자가 되시어 지금까지도 계속 도와주시고 계시다는 일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선생님의 열정과 인간미가 깊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상가에서 만난 몇몇 제자들을 보시곤 옛 일들을 하나하나 회고하시며 자네는 어떻게 지내며 누구누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으시면서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예전과 다름 없으셨다. 또한 요즘도 음악회나 전시회 등을 다니시면서 인생을 즐기시는 모습을 뵐 때마다 부러움과 함께 일상에 파묻혀 여유를 잃어버린 내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흥천 선생님께서는 은퇴하신지 11년이 되신 지금도 수학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시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계신다. 특히 학생들이 원서를 읽는데 도움을 주시기 위해 한 쪽은 원서로 나머지 한 쪽은 우리말로 옮겨놓으신 책을 보았을 때, 선생님의 한없는 제자사랑을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성호(71·수학) 모교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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