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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서 만난 사람 - 장재진(95 국문) 언어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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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02 11:25 조회14,6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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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새로운 길 열어준 금쪽같은 아이들”

 

코앞의 일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은 내비게이션 없이 떠나는 초행길 운전 같다. 고속도로처럼 훤히 닦인 길 너머 목표 지점이 있길 막연히 바라지만, 예상 못한 곡선주로나 언덕배기와 맞닥뜨린다. 잠시 숨 고르고 뒤돌아보고, 굽이굽이 돌아온 길이 만들어낸 절경을 돌아보며, 두려움 덜어낸 자리를 설렘으로 채운다. 언어치료사 장재진(95 국문) 동문의 인생 궤적이 이랬다. 소설가의 꿈을 안고 대학생이 된 그녀는, 시야에 없던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목표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힘차게 발을 내딛고 있다. 장 동문이 지난해 11월 펴낸 책 ‘아이의 언어 능력’은 입소문만으로 두 달여 만에 1쇄가 모두 팔려나가며 깜짝 베스트셀러가 됐다. 모교 캠퍼스에서 만난 장 동문은 “엄마 입장에서 직접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경험담이 바탕이 된 충고라는 점을 독자들이 공감해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설가를 꿈꾸다가 ‘공무원’이 되다

장 동문은 고교 시절부터 촉망받는 예비 작가였다. 고 2 때 문학사상사 주최 청소년 소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여러 학교의 문예창작학과 입학 특전이 주어졌지만, ‘학문으로서 문예를 배운다는 건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다’라며 모교 국문과에 입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재학 중 대산문학상 및 서강문학상에 잇따라 당선되면서 ‘등단 언제 하느냐’는 선후배들의 인사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전통적으로 평론이 강세인 모교 국문과에서 소설가 배출의 기대감이 컸다.

 

그런 장 동문이 전공과 재능을 살린 분야는 공직이었다. 민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민간 전문가들에게 정책홍보를 맡기던 흐름이 막 시작되던 2001년, 서울 용산구 민간홍보담당자 공개채용에 도전해 59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최종면접에서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겠냐는 질문이 나와서 ‘술먹고 풀겠다’고 답하니까 심사위원분들이 ‘빵’ 터지더라고요. 아무래도 그 덕분에 된 것 같아요.”

 

아이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글 쓰는 공무원’의 길을 순조롭게 걷던 그는 열 달을 뱃속에 품어 2004년 만난 첫 아이에 이끌려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택배 기사가 문을 쿵 닫아도, 어떤 소리에도 새근새근 잠자는 갓난아이를 보면서 ‘엄마의 불안한 직감’이 본능적으로 작동했다. 그 해 10월 병원에서 아이가 고도청각장애라는 최종 판정을 받고 돌아오는 길, 남편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고, 품에 안은 아이를 안고 창밖을 보는데 그렇게 하늘이 푸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남편이 먼저 묵묵히 중심을 잡았고, 자신도 덤덤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15개월 아이가 인공와우 이식술이라는 전신마취 3시간 수술을 마치고 다시 언어치료라는 재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맞닥뜨렸던 어려움은 지금 그가 걷고 있는 길로 이끄는 동력이다.

 

“아이에 대한 비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멘붕’이 왔지만, 나중에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 ‘내가 직접 배워서 가르쳐보자’라고요.”

 

2006년 만학도로 언어치료학과 신입생이 됐고 5년 뒤 공인 언어치료사 자격증을 얻었다. 그런 뒤 같은 전공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언어가 늦은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게 그녀는 동지이면서 조언자다. 앞으로 자신과 같은 입장의 엄마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아이의 언어능력’이다.

 

“말이 늦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로부터 읽을 만한 책 추천을 받고 찾아보면 딱히 없는 거예요.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운 전공 책 아니면 육아 책뿐이더라고요. 그때 불현듯 생각이 들었죠. 내가 써야겠구나.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몰라요.”

 

책은 거창한 담론도, 현학적 지식도 없지만, 부모들에 대한 충고와 조언을 꼼꼼히 담았다. ‘발음은 운동이다. 혀를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고 다그치지 말고 천천히 맞장구쳐주며 기다려줘라’ 같은 내용들이다. 원고 투고 이후 출판사 10여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그중 마음이 통한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홍보는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강하면서 정직한 홍보수단인 ‘읽은 이들의 입소문’이 제 역할을 했다. 분야별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른 것도, 신속히 2쇄 인쇄에 들어간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언어치료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15년간 일해 온 공직을 떠나 언어치료사이자 작가겸 강사로서의 삶에 매진하고 있는 장 동문은 책이 나온 뒤 몸이 서 너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됐다.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 아이의 언어 교육으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한 강연을 열고, 일선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방문해 장애인식개선 교육에 나선다. 장 동문의 책과 강연은 아이의 말이 늦어서 고민하는 부모들 사이에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장 동문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공인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지난 5월 6일 어린이날을 맞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키즈 락(樂) 페스티벌’에서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저자와의 만남’ 행사의 주인공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장 동문과 전혀 연고가 없는 전남 순천시는 ‘아이의 언어능력’을 순천시 좋은책 지원사업 대상 도서에 포함했다. 관내 서점 내에서 이 책을 살 경우 가격 일부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첫 책을 계약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두 번째 책을 계약했고, 올 하반기에는 독자들과 새로운 책으로 만날 예정이다. 6월부터는 우송대학교 언어치료청각재활학부에서 언어치료사가 꿈인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됐다.

 

지금도 신생아 1000명 중 3~4명은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들 가운데 95%가 인공와우나 보청기를 착용하고 구화(口話)를 사용하며 대부분 일반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정책 및 예산 지원은 수화(手話) 사용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한국난청인교육협회의 이사로서 부모들과 함께 전국의 교육청을 찾아가 청각장애 아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도 하고 있다.

 

청각장애 어린이 등장하는 그림동화책 펴낼 계획

눈코 뜰 새 없으면서도 틈틈이 (엄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상을 소셜 미디어에 전한다. 학창 시절 품었던 소설가의 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부터 다시 습작을 시작한 장 동문의 구상 작품 목록에는 청각장애 어린이가 주인공인 예쁜 동화도 포함돼있다. 미국 작가 시시 벨의 그림동화책 ‘엘 데포’ 같은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앓는 토끼처럼 큰 귀를 가진 소녀의 학교생활 적응기를 다룬 ‘엘 데포’는, 사실 작가 자신의 경험이 깃든 자전적 이야기다.

 

“얼마 전 습작을 시작하면서 대학 시절 썼던 글들을 읽어봤는데, 정말 겉멋이 잔뜩 들었더라고요.(웃음) 한걸음씩 천천히 내딛더라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앞날을 위한 축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정지섭(94 사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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