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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서 만난 사람 - 주미영(94 사학)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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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02 10:13 조회15,0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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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성악가이다. 로마 아네모스(2위), 오페라 리나타(특별상), 토스카(결선진출) 등 다수의 유럽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여러 편의 오페라에서 주연을 맡았고 리사이틀도 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 국립 베르디 음악대학에선 개교 이래 처음으로 바로크 음악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심사위원 전원이 만점을 줬다. 동양인 최초로 로마 바로까 앙상블 정단원이 됐고, 목소리가 담긴 앨범에 평론가들은 별 다섯 만점을 줬다. 이런 이력이니 당연히 유수의 음대에서 학부 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만, 출신 학교는 서강대 사학과. 그것도 두 차례 수능 시험에 본고사 치르고 입학한 정통 문과생이다. 인생은 전공불문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소프라노 주미영과의 인터뷰는 24년 전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앞뒤 학번으로 만난 친구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자책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도 담아 풀어놓는, 음악과 역사가 어우러진 오페라 같은 인생 이야기.

 

1막

데뷔는 여섯살. 교회 예배에서 ‘주님의 동산’이라는 성가를 불렀지. 그런 거 있잖아.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고 잘해지는 거. 그런데 노래를 업(業)으로 삼는다는 걸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집안은 보수적이었어. 고2때까지만 해도 ‘열공’하는 문과생. 그런데 고3때 레슨 한번 안 받고 재미삼아 나간 경기지역 콩쿠르에서 덜컥 2등을 했어. 순식간에 학교에서 밀어주는 성악 꿈나무가 된 거야. 오페라 마술피리 중에 ‘밤의 여왕 아리아’라고 있잖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 하는 그 노래. 음대 실기시험 곡으로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몰라. 명문 음대 진학은 떼놓은 당상인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정작 실기를 앞두고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맹연습이 독이 된 거지. 의사선생님은 평생 노래하고 싶으면 지금 당장은 포기하래. 서강을 택한 건 사실 그런 것도 있어. 가고 싶은 학교이기도 했지만, 캠퍼스에서 음대생들을 보면 못견딜 거 같았거든.

 

2막

치열하게 살았어. 그래야 할 상황이었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학비를 벌어야 했거든. 과외교사로 서울 강남과 강북을 휘저었어. 그렇다고 학교에 소홀하고 싶진 않아 에밀레(노래 동아리)부터 학내 언론사(SGBS)까지 문을 두드렸어. 그땐 기자로 특종도 했어. 알지? 1994년 한국사회를 들쑤셨던 박홍 총장님의 ‘주사파 발언’. 그 ‘1보’를 SGBS 수습기자 시절에 제일 먼저 터뜨렸어. 연단에 몰래 마이크를 붙여서 ‘주사파 발언’ 녹음 파일을 통째로 확보! 언론사들 전화가 SGBS 보도국으로 빗발칠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런데 치열한 만큼 많이 지쳤어. 휴·복학을 반복하면서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벗 삼아야 했고, 대학생이기에 앞서 꽤 수입을 올리는 학원 강사가 돼있더라. 난 누구인가, 앞으로 뭘 하나 정체성 고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3학년 마치고 자퇴서를 제출하러 갔을 때 94학번 지도교수 백인호 선생님이 따뜻한 커피를 내려주시면서 “자퇴는 재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 알지?”라고 상냥하게 말씀해주셨어. 방황 끝내고 졸업장 받을 수 있게 잡아 주신 거, 지금도 정말 감사해.

 

3막

2001년 음대 다니는 친구가 사사하던 교수님 앞에서 우연히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겼어. 잠시 후 대뜸 이러시는 거야. “이 녀석, 왜 노래 안했니?” 바로 나를 제자로 삼으시더라. 그 때 내 나이 스물여덟. 그 때 든 생각이 ‘남들보다 훨씬 늦게 돌고 돌아서 결국 이 길을 갈 운명이었나 보다’. 대학원(숙명여대 음대) 성악과에 합격하자 이제부턴 꽃길만 걸을 줄 알았어. 음악 본고장 유럽 유학 계획도 차근차근 세웠고. 그런데 누가 알았니. 그 꽃길에 무면허 차량이 끼어들 거라는 걸. 길바닥에 쓰러진 몸 위로 나를 친 차가 후진해 한 번 더 지나갈 때 내 뼈가 으드득 부러지면서 삶도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어. 유학하려고 모은 돈은 병원비로 날아가고, 다리엔 철심이 박히고. 그런데 신기하더라. 삶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낭떠러지에 이르니 초연해 지는 거야. 음악도의 길에는 성악만 있는 건 아니었잖아. 역사 전공을 살려 음악사, 음악이론까지 제대로 배우기로 하고, 유럽으로 떠났어.

 

4막

“미영, 네 노래에선 불꽃이 느껴져.”

2008년 독일 라이프치히 유학 시절 독일 가곡을 개인 지도해주신 레기나 베르너 교수님이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그 땐 음악사와 음악이론 공부가 메인이었고 노래는 상대적으로 뒷전이었거든. 그런데 목소리가 갈수록 좋아진다는 거야. 욕심을 비우니 목이 살아난 걸까. 2009년 12월 함부르크 극장에서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으로 무대에 섰어. 16년 전 고 3 때 내 목소리를 앗아간 그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 노래로 소프라노로서 공식 데뷔한 거지. 그리고 “성악은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배우라”라는 독일 교수님 엄명으로 밀라노로 와서 국립음대(석·박사)를 졸업하고, 미 존스홉킨스대 피바디 음악원(전문연주자 과정)을 마쳤어. 이젠 ‘음악가’라는 타이틀이 제법 맞는 것 같아. 이제 귀국독창회(2018 년 10월 여의도 영산아트홀)까지 열었으니 치열하게 살아야지.

 

그리고…. 나와 서강

예정했던 것보다 훨씬 굽이굽이 돌아오고, 험한 길에서 넘어져도 봤어. 그래서 더 소중한 길이었고 심지도 굳어진 것 같아. 그 길을 따라 ‘서강(西江)’이 흘렀어. 힘들고 치열했을 때 목을 축여주고 보듬어줬던 곳. 음대가 아예 없는 모교 졸업장은 인맥에서 자유롭고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무기야. 무수히 많은 근·현대 음악을 제치고 바로크 음악에 푹 빠져서 활동영역을 이쪽으로 특화한 것도 역사학도 본능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류장선 전 총장님, 백인호 선생님…. 귀국 독창회를 찾아주신 모교 은사님들을 뵈니 ‘서강대 나온 소프라노’ 답게 치열하게 실력으로 인정받자고 다짐하게 되더라. 앞으로 클래식 음악을 누구나 언제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친구처럼 만드는데 보탬이 되고 싶어. 콘서바토리(클래식 음악원)의 기원도 사실은 고아들을 돌보던 사회복지시설이거든.

 

P.S.

소프라노 주미영은 오는 8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창회를 열 계획이다. 양희은(71 사학) 동문 이후 이 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는 두 번째 서강대 사학과 출신 가수가 될 것 같다.

 

글 정지섭(94 사학) 서강옛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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