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펠로우 1회 이규봉(85 영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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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중 작성일10-11-17 17:19 조회11,8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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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과 동문회(서영회)가 발행하고 있는 'The SEA Letter'의 세 번째가 발행됐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는 첫 번째 서강펠로우(해외연수) 장학생으로 선발돼 1991년 7월 8일부터 8월 16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연수했던 이규봉(85 영문) 동문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현재 SK 해운에서 상무로 재직중인 이 동문의 인터뷰를 아래에 옮깁니다.
이번 서영회 뉴스레터는 제 1회 서강 팰로우 장학금의 혜택을 받으셨던 이규봉 동문(85학번, SK 해운 상무)을 만났습니다
Q. 영문과 출신으로서 다소 생소한 해운을 담당하고 계신데요?
제가 이 분야를 선택할 당시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당시 취업 시장에 나갔을 때, 기업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야겠다 무슨 일을 해야겠다는 것도 정확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졸업을 하면 영문과는 선택의 폭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 덜 하겠지만 경영학과, 법학과 등은 자신의 진로를 뚜렷하게 정하는 것 같은데 영문과 학생들은 그렇지 않죠.
그렇게 생각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기회가 먼저 SK에서 왔던 것 같고, 인연이 닿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 기업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미국 유학 시절 애국심이 많이 생겼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회사에 다니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92년도에 SK에 입사해서 98년도에 퇴사를 하고 미국으로 다시 유학을 가서 MBA하고 미국, 홍콩, 영국에서 일한 후 2008년 10년 만에 회사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Q. 서강 펠로우 장학금과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서강 팰로우 1기 장학생입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91년 말 겨울에 학생을 선발 해서 그 다음 해 여름에 유학을 보내주는 것으로, 가서 문물을 넓히고 안목을 높이라는 취지아래 여름 학기 동안 두 과목 정도를 수강하고 오는 코스였습니다. 아마 다수의 학생들에게 조금씩 장학금의 혜택을 주는 것 보다 소수의 학생들에게 집중 투자를 해서 좋은 기회를 부여하면 그 학생들 본인에게나 학교에게나 도움이 될 거라고 동문회 측에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장학금 수여자에게는 여행 경비, 비행기 표, 숙박비, 등록금 등이 지원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86학번 경영학과 친구, 85학번 종교학과 친구 그리고 88학번 여자학우 4명이 선발이 되어 둘은 곤자가 대학교, 둘은 샌프란시스코 대학교로 연수를 갔습니다.
Q. 그렇다면 당시 서강 팰로우 장학금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 때만 해도 9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여행 자유화가 된지도 1년 남짓이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 학부생이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서강 팰로우 장학금 공고를 보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Q. 당시의 선발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시험과 면접이었습니다. 일단 기억나는 시험 문제는 영자 신문에서 기사를 발췌해서 그 기사 내에 단어를 스무 개 정도 무작위로 비워 놓고 그 자리에 단어를 채워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어 인터뷰를 했습니다.
Q. 당시 미국에 다녀온 경험이 선배님께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매우 성장한 시기였습니다. 미국의 거리에는 일본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무언가 설명을 해주더라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등 일본의 국력이 매우 막강할 때였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것이 저를 매우 바꾸어 놓았죠. 세상에 나가보니 일본이 단순히 우리 나라 옆에 있는 우리가 깔볼 수 있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 자극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언론계에 들어가서 언론인이 되는 것이 학창시절 저의 목표였는데 이것을 계기로 기업인이 되는 것 또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서 진로를 바꾸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장학금을 떠나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라는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돈을 써서 하던 장학금을 받아서 하던 그럴 기회가 많지 않은데 젊었을 때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는 것이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요. 우리말 하는 사람들끼리만 친구하다가 해외에 나갔더니 독일, 대만 등등 전세계 사람을 만나면서 별의별 아이들을 만나봤죠. 지금까지 제가 비즈니스 맨으로 지내면서 우리나라 보다 해외에서 더 오래 있었는데 그런 바탕을 만들어준 첫 단추였습니다. 또 요즘 입사하는 사람들의 지원서를 보면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거짓말 안하고 100% 다들 해외 유학이나 봉사 활동 등의 경험이 있더라구요.
Q. 현재 장학금 또는 학교에 기부금으로 도움을 주고 계신가요?
영문과 동문회와 학교에 모두 내고 있습니다.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고 자동이체로 해놔서 저도 모르게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꼭 장학금으로 내는 것은 아니고 학교의 발전을 위해 기부금 식으로 돕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예전에 프라이스 신부님 돌아가셨을 때 그 뜻을 기리기 위한 장학금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참여했었습니다.
Q. 현재 장학생들끼리는 연락을 유지하고 계신가요?
제가 1기 서강 팰로우이니까 지금은 20기쯤 나와서 굉장히 큰 집단이 되었을 텐데, 제가 해외에 오랫동안 나가있다 보니까 지금은 끊겼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팰로우 만의 모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1,2기 차이의 사람들끼리는 친숙하지만, 조금 기수가 멀어지면 서로 잘 모르다 보니 소원해졌습니다.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프라이스 신부님 학생들 중 졸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소모임이 있었는데, 화요일 날 만나서 이름이 화가였어요. 화요일 저녁에 그 분 집무실에서 만나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는데 신부님이 서강 팰로우 심사위원이셨었는데 그 분께서 뽑았던 사람들을 나중에 화가 모임에 초대해서 같이 자주 조우하곤 했죠. 지금 신부님께서 돌아 가셔서 새로운 멤버가 생기지는 않지만 서강 팰로우 뿐만 아니라 훨씬 선배님들을 포함해 매우 비공식적으로 유지되고 있어요. 모임 회원들끼리는 계속 연락하고 신부님 기일에는 같이 산소도 가고 집안에 경조사를 함께 하기도 하고 학교 행사에 참여도 합니다.
Q. 학교 생활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놀러 다니는 건 다 따라 다녔어요. 특히 엠티는 영문과, 클럽, 고등학교 동문들끼리 등등 30번 정도 갔었습니다. 과 활동 외에는 기타동아리 현우회에서 활동 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중국연구회에도 참여했었고 영문과 영어 연극에도 스텝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었죠. 제가 학교 다니던 시기는 민주화라는 분위기 아래 있었기 때문에 수업을 들어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를 두고 학생들끼리 모여서 토의도 많이 했었습니다. 사회 운동을 해야지 지금 수업을 들을 때냐. 그 때만 해도 나가서 돌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런데 한 친구가 용기 있게 나는 학교에 수업 듣고 공부하러 온 것이라고 의견을 내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죠.
Q. 인재를 뽑는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는 학생이던 당시에 목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취업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대학의 낭만은 없어지고 취업 준비에 너무 열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균형을 잘 맞추어 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거기에 맞는 취업 준비를 할 텐데 그것을 알기도 전에 사회에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맞추어 준비를 하니까 핀트가 빗나가게 되면 나중에 고생하게 됩니다. 내가 뭘 하면 기쁘고 행복하고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고 나서 그거에 맞는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또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른들 얘기하는 것이 잔소리라고 들릴 수 있지만 사실 틀린 말이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기대하는 것이 뭔지 들으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실 대학생이면 어리기는 하지만 사회에서 보면 엄연한 한 축을 형성하는 세대이니까 의젓한 생각을 할 수 잇는 준비를 해야겠고요. 하지만 균형이 또 중요합니다. 애늙은이처럼 고민만 하지는 말고,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세요.
Q. 앞으로 서강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학교가 잘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것을 시작으로 졸업생과 재학생들에게 자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와튼 스쿨을 졸업했는데 그 곳에서는 엄청난 기부금이 들어옵니다. 그 만큼 사회에서 인정을 받아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기부 액수가 많아지면 좋은 교수진, 좋은 학생, 좋은 교육 환경이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아직 완전히 그런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구조가 필요합니다. 재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의 질을 높이고 졸업생들도 사회에 기여를 하면서 학교의 이름에 먹칠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글 10학번 조은재
사진 10학번 한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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