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수기] “선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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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9 14:57 조회11,1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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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원주에 계시는 부모님과 더불어 지금은 결혼한 누나와 단란한 4식구를 이룬 가정의 장남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대한중석회사 연구원이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다만 누나가 심장병이 있어서 집안의 걱정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서로 아끼며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거듭된 시련
하지만 아버지가 퇴직 이후 작은 건축 관련 자영업을 시작한 뒤부터 문제가 하나 둘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업 출자금을 마련하느라 어머니가 학교를 퇴직했는데, 때마침 외환위기가 발생하는 바람에 사업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매형의 사업 보증을 부모님이 섰고, 매형의 사업은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지난해 집은 물론 아버지 사업체까지 경매에 잡혔고 집행됐습니다.
지금도 집안 곳곳에 붙어 있던 차압을 뜻하는‘빨간 딱지’를 보며 눈물짓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현재 신용불량자 신세가 된 부모님과 누나의 식구들은 월세로 근근이 버티면서 새로 직장을 구한 매형과 누나가 조금씩 빚을 갚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들어오는 기간제 교사 활동을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환갑을 넘긴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속에서 아침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하고 계십니다.
학업을 관두고 취업할까도 고민
이러한 가정환경 속에서 저 역시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생활비와 등록금을 위해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경매 집행 이후 부모님의 월세와 부채원금 미상환분 등으로 2000만원을 드리다보니 학업을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보니 일찌감치 취업전선에 뛰어들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졸업을 서둘러 한 뒤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옳은 판단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학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었습니다. 당장의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수백만 원에 달하는 학비는 저는 물론 온 가족에게 사치를 부리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대출을 받으려 해도 은행 문턱 조차 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동분서주하는 동안 마지막 기대를 품고 동문회관의 문을 두드려 동문장학금을 신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달 간에 걸친 심사 끝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쁨과 희열이 동시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만큼 감격적이었습니다.
2007년도 2학기와 2008년도 1학기에 서강동문장학회로부터 동문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선배님들이 제게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여러 해 동안 갈라질 대로 갈라진 땅에 뿌리를 박고 있던 나무가 단비를 만난 기쁨이었습니다. 희망을 품고자 했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기에 뼈 속 깊이 파묻혔던 아픔이 달래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웃에 힘이되는 ‘서강인’이 되겠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한 학생이지만, 조만간 서강 선배님들의 뒤를 이어 실력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서고자 합니다. 유능한 인재로 일하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꾼이 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학업에 정진하겠습니다. 장학금 수혜를 받은 후배들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 늘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글=김용년(05 경영)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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