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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경장학회, 가객 정태춘과 감동의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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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12-15 09:11 조회8,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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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저녁 모교 X관 민주광장 밑에 조성한 지하 곤자가 홀에서 두 가지 ‘특별한 장면’이 성사됐습니다. 첫째,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가수 정태춘 박은옥 씨가 서강을 방문,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재경 장학회’에서 마련한 콘서트에 기꺼이 우정 출연해 감동을 주었고, 서강동문들과 어울려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자정까지 이어진 뒷풀이도 함께 했습니다. 둘째, 70,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동문 230여명이 대거 모였습니다. 고(故) 정재경(82 사학) 동문의 유지를 받들어 조성한 장학금에 십시일반 도움을 준 동문들이었습니다.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서 반가운 얼굴들이 전부 모인 듯했습니다.

 

70학번 박석률(경제), 74학번 김선택(경제) 동문부터 97학번 이윤미(종교) 동문까지 27년의 세월을 넘어서는 ‘운동권 동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힘은 ‘정재경 장학회’의 정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재경 장학회와 함께 하는 가을 콘서트’ 막이 올랐습니다. 콘서트 사회는 박선봉(82 국문) 동문이 맡았습니다. “집회 사회만 보다가 음악회 진행은 처음인데, 82학번 동기들은 대개 졸업을 못했는데 16년간 학교를 다닌 나는 1998년 2월 졸업한 어엿한 대졸(大卒)인 덕분에 사회를 맡긴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200석이 훨씬 넘는 콘서트 좌석을 과연 채울 것인가? 반신반의했는데 이렇듯 전부 채웠다. 놀랍다.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하고, 이후 공장생활하고, 대학원 공부하고, 중국 유학 가고, 투병하던 동기 재경이가 생각난다. 투병생활을 내색하지 않았던 ‘속 깊은’ 동지였다. 재경이를 가슴에 묻으려 했는데 장학회가 탄생했다. 오늘은 장학회를 도운 여러분들을 위해 만든 자리다. 마음껏 노시라.”

 

정재경장학회 공동대표를 맡은 박석준(78 경제) 동문이 담담한 어조로 인사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정재경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죽음은 생물학적 관계의 소멸일 뿐, 사회적 관계는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며, 재경이가 맺은 사회적 관계는 지금 이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가을 콘서트를 마련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재경이의 뜻을 전하고 장학회를 만들기로 한 사람들, 가족, 동문, 총학생회 후배들 등 재경이와 뜻을 함께 하며 선뜻 기금을 내놓은 사람들, 재경이가 공장 노동자로 일한 곳의 동지들, 재경이를 알지 못하지만 신문기사를 보고 무조건 회비를 내주는 사람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정용수(81 사학) 동문이 정재경 장학회 운영상황을 보고했습니다. “2억6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고, 올해 1, 2학기 통틀어 대학생 6명과 고등학생 4명에게 총 2200만원의 장학금을 주었다”며 “10월 현재 CMS 또는 자동이체 회원이 118명이며, 매월 227만원이 입금될 정도로 튼실하게 운영된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재경 동문의 지도교수였던 조병한 사학과 교수가 참석해 고인을 회고했습니다. “고인은 석사과정 들어올 때부터 만학도였다. 석사논문이 ‘19세기 말 청나라 개혁운동’이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중국 유학을 갔고, 나와는 많은 학술 토론을 했다. 기대가 컸는데…, 안타깝다. 사학계에 큰 손실이었다. 나는 고인과 마지막을 같이 지낸 사람이다. 친구, 선후배들의 증언을 들으니 고인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것 같다. 장학금을 조성해 후배를 돕는 동문들을 보니 감명 깊다. 여러분 덕분에 애통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며 소회를 말했습니다.

 

이어 고인의 가족으로 콘서트에 온 어머니와 언니가 소개됐고,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사회자는 “판소리 3요소는 관객, 고수(鼓手), 명창이다. 예술은 소통이다. 명창보다 중요한 요소가 관객이다”며 “주저하지 말고 다 함께 신명나게 즐기라”고 힘줘 말했습니다.

 

첫 번째 가수는 ‘사이’였습니다. 가수 ‘싸이’를 기대한 분들은 적이 실망했을 수 있겠지만, 꿩 대신 닭이 아닌 ‘꿩 잡는 매’였습니다. 노래실력과 내공이 대단한 가수였습니다. 충북 괴산에서 5년째 농사지으며 터득한, 투박하나 정감 있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앨범 <유기농 펑크포크>에 실린 △냉동만두 △얼굴 △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귀농통문 △엄마말 5곡이 기타 선율에 섞여 흥을 돋웠습니다. 펑크포크 장르 특유의 정겹고 흥겨운 그러면서도 진한 서정이 담긴 노랫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어 민중가수의 대표주자 ‘꽃다지’가 등장했습니다. MR(반주음악)을 틀지 않고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는, 현장감을 증폭했습니다. △나의 노래는 △이매진 △착한 사람들에게 △이 길에서 등을 부른데 이어 70, 80년대 학번들의 귀에 익은 ‘열사람 중에서 아홉사람이 내 얼굴을 보면서 손가락질 해~’가 나오자 모두 손뼉 치며 따라 부르는, 합창모드로 급전환했습니다.

 

마무리는 ‘바위처럼’ ‘행복의 나라로’였습니다. 참석자들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머리 위로 손을 쭉 뻗어 올려 큰 박수를 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명물허전(名不虛傳)이었고, 꽃다지에 ‘민중가요의 종갓집’이란 평판이 쏟아지는 까닭이 괜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날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가객 정태춘 씨가 마지막으로 등장하자 삽시간에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정태춘 부부는 행사 시작 2시간 전에 도착해 리허설을 진행하는 등 프로다운 진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정태춘 씨는 “그동안 세상을 등졌다. 아예 정리했었다. 문명 자체가 절망인데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좋은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선의(善意)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세상을 만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이종회(78 사학) 씨의 출연요청을 받고 고민했다. 중요한 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부채감을 갖고 사는데… 정재경 씨의 뜻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보고, 무대로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표곡 △떠나가는 배  △92년 장마, 종로에서 △리철진 동무에게 등이 울려 퍼졌습니다. 앵콜이 쏟아졌고, 추가로 몇 곡이 더 불렸습니다. 마침내 관객들이 ‘박은옥’을 연호했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예언했듯 “근년 정말 보기 힘든 정태춘-박은옥 듀엣 공연”이 펼쳐졌고, 참석자들은 전부 ‘노래로 축복 받은 사람’으로 승격됐습니다. 몇몇 동문들은 기립해 환호했고, 온몸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태춘 씨가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9년만에 앨범이 나온다. 8곡을 넣었고, 현재 마무리 작업 중이다. 30년 함께 산 집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 것 같다. 내 노래를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아직도 체제폭력 앞에 희생당하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다시 불렀고 녹음했다. 선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정재경 장학회의 선의가 따뜻하게 살아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콘서트의 막이 내리자 △조선래(81 독문) △이창섭(84 국문) △김현정(87 사학) △정욱(91 경영) 동문이 바빠졌습니다. 소나무 출판사 유재현(73 철학), 휴머니스트 김학원(81 국문), 북하우스 김정순(83 국문) 동문이 기부한 서적과 풀무원 이효율(75 물리/철학) 동문이 기념품으로 준 김, 미역세트를 골고루 나줘 주느라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뒷풀이에도 5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정태춘 씨는 자정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했고, 귀농해 충남 아산에서 올라온 김주상(83 신방) 동문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꺼이 사진촬영에 응했습니다. 김 동문의 두 아들은 정태춘 씨와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늦게까지 기다리는 열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콘서트를 준비한 주인공들. 왼쪽부터 김현정(87 사학), 조선래(81 독문), 이종회(78 사학), 정용수(81 사학) 동문>


<70년대 선배들도 참석, 자리를 빛냈다. 앉은 사람 왼쪽부터 장근주(78 화학), 박석률(70 경제), 김선택(74 경제) 동문>


<맨 앞 테이블에 앉아 오랜만의 만남을 반기는 83학번 동기들>


<담소하다 잠시 포즈를 취한 81, 82학번들>


<두 딸과 함께 콘서트를 찾은 박종묵(81 정외) 동문가족>


<콘서트 사회를 맡아 좌중을 휘어잡는 입심을 보인 박선봉(82 국문) 동문. 집회 사회만 보다가 음악회 진행은 처음이라고 말은 했지만, 출중한 실력에 곧 겸양임이 드러났다.>


<박석준(78 경제) 정재경장학회 공동대표가 담담한 어조로 인사하는 모습>


<장학회 운영상황을 보고하는 정용수(81 사학) 동문>


<고 정재경 동문의 지도교수였던 조병한 사학과 교수가 참석해 고인을 회고했다. "장학금을 조성해 후배를 돕는 동료들을 보니 감명 깊다. 여러분 덕분에 애통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소회를 전했다.>


<고인의 가족. 맨 왼쪽은 언니, 맨 오른쪽은 어머니>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는 박순빈(82 영문, 왼쪽에서 두번째) 동문이 한겨레 재직 동문후배들을 데리고 왔다.>


<펑크포크 쟝르를 개척한 가수 '사이'>


<민중가수의 대표주자 ‘꽃다지’. 힘차고 경쾌하고 때론 숙연한 노래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가객 정태춘 씨의 등장.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 귀를 기울였고, 그의 격정적인 노래에 모두 환호했다.>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돌아왔다. 선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찾은, 그 첫 장소가 서강이었다.>


<관객들의 연호에 떠밀려 무대에 오른 박은옥 씨. 근년 정말 보기 힘든 정태춘-박은옥 듀엣 공연이 펼쳐지자 행사장을 떠나보낼 듯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노래 한곡이 끝날 때마다 환호하는 동문들>


<다함께 어깨를 겯고 노래를 합창하는 동안 콘서트의 막은 내려갔다.>




<콘서트를 마치고 기념품과 책을 나눠주는 모습>


<뒷풀이에도 참석한 정태춘 씨는, 충남 아산에 귀농해 농사를 짓는 김주상(83 신방) 동문가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진촬영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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