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정택(71철학) 이사장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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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9-10 14:24 조회11,6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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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가지 않은 길 개척하는 용기 되살려야 ”
서강옛집 편집위원회가 학교법인 서강대학교 제17대 이사장 김정택 신부와 7월 4일 오후3시 본관 3층 이사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는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서동욱(90 철학) 편집위원, 이창섭(84 국문) 사무국장, 정범석(96 국문) 편집팀장 등이 참여했다. <편집자>
먼저,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 지금이 서강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볼 때, 어깨가 무겁습니다. 30여 년 간 서강에서 교수로 봉직해왔습니다만, 지금 이 시기에 이사장의 중책을 맡고 보니 소명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봉사와 헌신의 기회구나. 하느님의 어떤 특별한 뜻과 계획이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장님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제의 길을 걸어오신 삶의 이력에서 이채롭다면 이채로운 점이기도 합니다.
- 제가 고등학생 때는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돕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고향 포항 본당의 프랑스인 신부님에게 깊은 감화를 받으면서 ‘사제가 되는 건 영혼의 의사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어요. 결국 수도자의 길을 택해서 대건신학대학교에 입학했지요. 신학교 2년 반을 마치고 입대영장이 나왔는데 당시 해병대 복무기간이 30개월로 육군보다 6개월 짧았습니다. 복학 시기를 맞출 요량으로 해병대 입대를 신청했는데 합격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해병대가 예나 지금이나 훈련도 엄하고 힘듭니다만, 성소(聖召)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고 고된 훈련과 복무 기간을 통해서 건강도 많이 좋아졌어요.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한다지 않습니까? 해병대 복무는 여러 가지로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예수회, 곧 서강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 제가 다닐 때 대건신학대학은 예수회, 그러니까 당시로는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가 사실상 교육을 맡고 있었어요. 교수 대부분이 예수회원들이셨거든요. 제대를 6개월쯤 앞두고 교구 본당보다는 수도회가 나에게 맞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회에 편지를 보냈고 휴가 때 존 V. 데일리 신부님과 새벽까지 면담했습니다. 수도회로 옮기자면 대구교구 주교님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허락을 얻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서강대 철학과로 편입할 수 있었는데 대건신학대학에서 전학한 셈이기도 했죠.
이사장님께서는 ‘참사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교육철학이 이 말에 녹아들어 있다고 보입니다.
- ‘사람을 살리는 참사람을 기르자’는 것이 제 교육철학입니다. 참사람이란 안과 바깥이 온전하게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가치관을 확실하게 세우고 그것을 남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실천하는 사람이지요. 무엇보다 먼저 인생의 참된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남을 위해, 내 이웃과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 즉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투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을 가지고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에는 보편적 연대성(universal solidarity)이 매우 중요합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하면 자꾸 국제적인 경쟁력만 말합니다만, 남보다 앞서고 남을 이기는 경쟁력이 아니라 남들과 연대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재학생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서강혼”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신‘서강혼’이라는 표현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 ‘서강혼’이란 무엇일까 묻는다면 사람마다 조금씩 답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런 예를 들고 싶어요. 초창기 예수회 신부님들은 강의 시작 10분 전 쯤에 강의실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리시곤 했어요. 그러다가 학생들이 오면 먼저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과 배려입니다.
서강에 몸담은 모든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존중 받는다는 느낌과 기억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먼저 존중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서강에 몸담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의미에 대한 숙고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신입직원 교육이나 신임 교수 오리엔테이션 같은 시간을 통해서 그런 성찰의 기회를 갖도록 할 계획입니다.
서강의 위상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동문들 사이에서 그런 우려가 많습니다.
- 길게 보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는 양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의 경쟁구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대학평가기준만 하더라도 물량주의, 물질주의에 바탕을 둔 기준 일변도거든요. 그런 전반적인 풍토 속에서 우리 서강에서도 좋든 싫든 넓은 의미의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서강만의 고유한 교육이념이랄까요, 그런 것도 퇴색되었다고 봐요.
양적인 잣대로만 이뤄지는 치열한 경쟁구조를 무작정 따라간다면 우리 서강의 활로는 없습니다. 양적인 잣대를 뛰어넘는, 그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향해야합니다. 말씀드린 바 있지만 참사람 교육이 바로 그런 가치라고 할 수 있어요. 서강의 고유한 브랜드 가치가 있다면 참사람 교육에서 찾을 수 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남들이 다 같은 길을 걸어가려 할 때, 남들이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개척하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역사에서 서강이 걸어왔던 길이 바로 그렇다고 보고, 또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고 보는겁니다.
최근 인문학의 중요성이 학계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널리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강의 고유한 강점들 가운데 하나가 인문학 또는 인문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 인문학은 참사람을 길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세속화 경향을 말씀드리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인문정신이 학과를 불문하고 폭넓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그간 다소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나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고요. 인문 분야는 학교에서지금보다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지원하면 중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서강의 인문학 전통이 탄탄한 만큼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거죠.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 다르게 학생들이 강의에 참여하면서 삶이 변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체험과 연결되는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이미 세상은 수직적 위계의 시대에서 수평적 네트워크의 시대로 변했습니다. 모두가 배우고 모두가 가르치는 세상이 된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삶의 상호의존성, 세상의 다양한 요소와 분야들 간의 상호의존성이 더욱 커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들 간의 융합이 강조되고 있는 거고요. 그런 융합의 축이자 틀이 바로 인문학입니다.
서강의 인문학 또는 인문정신의 르네상스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 인문학도 일방적인 강의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이슈와 주제를 찾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야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학문과 삶의 연관성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면, 최고 수준의 인문학 교육이 이뤄지는 겁니다.
과학기술, 사회과학, 경영학, 경제학 등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문 정신은 결국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깊은 공감이거든요. 그런 의미의 인문정신과 인문학의 방법이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고 또 통해야 한다고 봐요. 사람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는 학문은 뿌리가 얕아요. 서강이 뿌리 깊은 나무로 튼튼하게 설 수 있는 기반이 인문정신입니다.
유기풍 총장님이 산학협력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추진력, 그리고 의지를 갖고 계십니다만 사실 인문학의 중요성,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은 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서강의 인문학 부흥, 인문정신의 르네상스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서강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 서강 동문들은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습니다. 이건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어요. 학교 발전에 관해 다양한 의견을 주시는 동문들이 많거든요. 더구나 얼마 전 총동문회장으로 취임하신 김덕용 회장님은 모교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각별한 분입니다. 한번 시작하신 일은 분명하게 결과를 내고야 마는 확실한 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 총동문회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총동문회가 동문들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모아내는 기회, 계기들을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교 사랑의 불길을 더욱 뜨겁게 지폈으면 좋겠습니다. 서강의 자부심, 서강인의 자긍심을 결국 누가 세우겠습니까?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문들의 활약상에서 자부심과 자긍심이 나오거든요.
저도 이사장으로서 우리 동문들이 자연스럽게 학교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확충해나가고자 합니다. 동문들이 오랜만에 찾은 모교에서 존중받았다는 느낌, 환대받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는 총동문회와 학교와 재단이 함께 노력할 부분이 있을 겁니다. 재단 이사장실은 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동문 여러분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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