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풍경] 베이슬 M. 프라이스(Basil Mervin Price)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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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4-21 11:50 조회5,18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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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프라이스 신부가 본관 건축 모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건축가 김중업 설계.
베이슬 M. 프라이스(Basil Mervin Price, 1923~2004) 신부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태어나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학사와 문학석사, 교회신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예수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34세 때인 1957년 한국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프라이스 신부는 1960년 개교하자마자 사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세관에 가서 교육에 필요한 물품을 인수하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이한택 신부는 "구석진 자리에서 묵묵히 많은 일을 해온 성인"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프라이스 신부는 독일 정부 지원을 받아 1966년 6월 교내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문제 전문연구소인 '산업문제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일상은 지극히 검소했습니다. 어두운 사무실이라도 낮에는 전등을 켜지 않고 창가 빛에 의존해 일하고, 서류봉투는 낡아 헤질 때까지 사용한 다음 메모지로 이용하는가 하면 일회용품이라도 사용 후 씻어 말려 다시 사용했습니다.
웬만한 곳은 걸어 다니고 서울시내 지하철과 버스 노선을 훤히 꿰고 있었으며 받는 선물들은 달동네나 고아원에 보냈습니다.
프라이스 신부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의 예수회 묘역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생전 모습처럼 제일 구석진 자리에서.
존 P. 데일리 신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서강 그리고 한국 그 자체였습니다." (“Fr. Price for me was Sogang and Korea”, John P. Daly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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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올해가 프라이스신부님 탄신 100년입니다.
생신일 (6월18일) 특별미사와, 소천 직후 발간했던 추모집 "물처럼 공기처럼" 증보판 출간기념 모임을 합니다.
혹시 신부님 추모에 관해 관심 가지신 분은 저에게 연락주시면 좋겠습니다.
정 훈 (010-6238-3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