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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은사님 명강의- 이병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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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4-01-05 14:01 조회12,4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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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두려워 말고 인내심을 가져라, 그것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될 것이다”

 

목수의 삶이 그렇듯 배 만드는 사람의 습은 어딘가 성자를 닮은 데가 있다. 마도 수공(手工)은 인간이 자신의 몸과 몇 가지 겸손한 작은 도구들만을 부리는 가장 솔직한 활동이며, 배는물위에 숨겨진 길들을 찾아 생명 가진 것들을 인도하는 보호자의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배 만드는 물리학자’로 유명한 이병혁 선생님을 찾아갔다. 

 

대부도의 끝자락에 있는‘고랫부리’라는 바다 내음 나는 이름을 가진 고장이 선생님 내외분의 새로운 거처이다. 작년에 전남 마진도(馬津島)에서 이쪽으로 옮겨 오셨다. 선생님께서 마진도에 자리 잡으신 내력은 이미 너무 유명해서 설화나 신화같은 느낌을 준다. 이 설화는 1991년 8월 30일에 있었던 선생님의 퇴임 행사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퇴임에는 조금의 서운함이나 쓸쓸한 기분도 없었던 듯 하다. 왜냐하면 퇴임은 선생님께는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었을 뿐이니까. 퇴임 바로 다음날 선생님께서는 과학관 지하의 공작실에서 만들어 오신 배 ‘서강호’를 트럭에 싣고 남도 바다로 내려가셨다. 그것이 마진도에서 선생님과 서강호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왜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싶으셨을까? 

 

“어려서 외가가 섬에 있었어요. 그런데 바다에서 배들이 하얗게 물살을 가르며 가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들어있던 이 풍경 한 장이 선생님께서 마진도에 거처를 마련하고 서강호를 띄우게 되신 사연이다. “돛과 노에 익숙한 사람의 손에 보트는 경쾌히 응했다. 바다는 평온했다. 그대의 마음도 경쾌히 응했으리라”(T.S. 엘리엇,「황무지」에서). 아마도 마진도 앞바다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을 타고 달리는 그배의 모습은 이 시 구절에 나타난 광경같지 않았을까? 선생님께서는 마진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며 보내신 10년을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으셨다. 

 

그러나 응급 상황시 의료 시설이 너무 멀다는 단점 등 때문에 서울의 자제분들과 보다 가까운 곳으로 옮겨오게 되셨다 (선생님 자제분들은 반갑게도, 그리고 놀랍게도 모두 서강 식구들이다. 맏아들 이기영 박사(74학번)는 정치학을, 차남 이기석 동문은 철학을, 모교 물리학과 교수인 삼남 이기진 박사(80학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물리학을, 그리고 딸 이은주 동문(81학번)은 국문학을 서강에서 전공했다) .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닌 대부도로 오셨을까? “조건은 꼭 바다가 보이는 곳이어야 했어요.” 선생님께서는 그만큼 바다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포도밭 너머로 바다가 출렁이고, 바다 저 건너에는 당진화력발전소의 흰 연기가 구름과 태양 속으로 섞여 드는 시적(詩的)인 풍경이 바라보이는 아 늑한 땅에 터를 잡으셨다. 썰물과 함께 새벽 기운이 거실에 스며들고, 밀물과 함께저녁 햇살이 그림자를 남기는,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나 등장할 법한 해변의 산장이 지금 선생님 댁이다. 

 

이곳에 오신 뒤에도 배 만드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시려고 기회를 엿보고 계시다. ‘서강호’를 보다 큰 규모의 요트로 개조하실 꿈이 늘 즐거우신 거다. 그러나 먼저 이곳 대부도에서는 포도밭을 가꾸는 농부의 모습으로 변신한 선생님을 뵐 수 있다. ‘Chateau de Goreappuri’라고 자신있게 레이블까지 붙인 포도주를 생산하신다. 한잔 가득 따라주신 작년도 포도주를 맛보았다. “빛의 축복을 받고 천둥치는 신으로부터 포도주의 환희는 나온다”(횔덜린,「빵과 포도주」에서). 정말 그랬다. 땅 속에서 포도나무 뿌리가 끌어낸 광물의 신비 와 서해 바다의 바람에 단련된 태양의 축복, 여름 저녁이면 향기 퍼져나가는 포도밭에서 잉잉거렸을 꿀벌들의 날개소리가 만들어낸 맛이었다. 들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드라이한 것도 아닌, 그러면서도 햇 와인다운 가벼움을 지닌 신비한 액체가 신성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동맥 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럼 이런 맛있는 술을 만들어내는 포도밭지기는 과연 이제 수공과 발명은 그만두셨을까? 60년대 전남대 교수 시절 자동복사기의 발명으로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서강 시절 내내 공작실에서 뭔가 만들어내기를 그치지 않았으며, 마진도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태양열 목욕탕을 구상하기도 했던 이 타고난 발명가가 공작실을 떠났을 리 없었다. 집한 켠에 딸린 공작실을 열자 은빛의 기계가 반짝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최근 발명 중이신 절연체 가공에 쓰는 기계였다. 기계에 부착할 3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절단기가 이 발명가가 요즘 고심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주로 아이디어는 밤에 떠오릅니다. 그러면 아침에 이 아이디어를 적용해볼 생각에 즐겁지요. 지금 절단기가 마음에 안 들어 여러 가지 형태로 시험해 보고 있어요.” 

 

이렇게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것을 적용해 보고, 다시 수정하고, 또 만들어 보고하는 재미 속에 평생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하셨다. 의무 때문에 하는 연구가 아니라 즐거워서 하는 공부였고, 일이 아니라 놀이였다. 이기진 교수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한다. "어렸을 땐데 1월 1일 설날도 연구실에 나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갔던 기억이 나요. 문이 잠겨서 R관 보일러실을 통해 연구실에 올라가서 연구하시는 아버지 곁에서 놀곤 했죠." 공부가 즐거운 놀이였던 선생님께서는 설날도, 일요일도 없었던 것이다.

 

물리학과의 제자들은 항상 푸근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을 못 잊는다. 이병혁 선생님 때문에 물리학과를 지원했다는 이용산(77, 대진대 물리학과 교수) 동문은 선생님께서는 늘 아버지처럼 제자들을 배려해 주시곤 하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르고 나무 그늘 밑에 서듯 선생님께 의지했던 것이리라. 제자들이 인상깊게 기억하는 선생님의 또 다른 면모는 절약정신이다. 공작실의 볼트 하나도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간수하셨고, 잘 챙겨둔 부속들은 언젠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을 배웠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선생님께 젊은 학생들을 위한 말씀 한 마디를 부탁드렸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어라, 그것은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해방 후 처음 대학 생활을 했을 때를 회상하셨다. 막노동까지 해가며 공부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 때의 고생이 그 후에 살아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고통을 만나면 그것을 축복밭은 절호의 기회로 여겨라. 그 불길에 자신을 담금질하라.

 

학교를 떠나셨어도 선생님 눈길 위에 떠있는 서강의 제자들은 여전히 멀리 시집보낸 딸들처럼 안쓰럽고 걱정스러우시리라. 선생님 내외께서는 '선후배 동료간에 늘 서로 아끼고 끌어주라'고 서강인들에게 당부하신다. 이런 따뜻한 포도밭지기의 손길 속에 자라는 저 고랫부리의 포도나무들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포도나무들처럼 때로 갈 길을 못 찾고, 바람과 비에 맞아 울며 노고산 자락에 서 있는 우리들도 선생님의 따뜻한 눈길이 언제까지나 바라봐 주시면 좋겠다. 이런 따뜻한 눈길 위에 떠 있는 우리 제자들은 사실 얼마나 행복한 포도나무들인가!

 

서동욱(90 철학) 시인/문학평론가, 철학과 강사,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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