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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68.신방) 동문 본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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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영애 작성일06-02-24 16:39 조회9,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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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용이 형을 생각하며,
옛집에 실린 김동원선배의 글을 옮겨 봤습니다.


김동원(74.신방) 삐딱했던 형에게 삐딱한 아우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지?' 약간 고민을 하다 형을 택했습니다. 최근에도 가끔씩 뵙긴 했지만 이 기회를 빌어 하고 싶어도 면전에선 못했던 말씀을 드리고 싶었죠. 대학시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좋든 싫든 그건 형이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창 우쭐했던 신입생시절 '예쁜 여학생들이 많다'란 유언비어에 속아 불쑥 들어간 연극반에서 연출을 맡은 형을 처음 만난 게 벌써 30년 전이군요. 솔직히 형의 첫인상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허름한 잠바, 촌스런 스포츠머리에 삐쩍 마른 몸매, 쏘아보는 눈매의 형은 제가 기대하던 우아한(?) 연극인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으니까요. 그렇지만 곧 형이 가진 연극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에 빨려들기 시작했고 대학시절 내내 집보다 연극반에서, 강의실보다 극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한 두 마디밖에 안 되는 대사 연습한다고 저녁 굶으면서 차례를 기다리고, 세트장에서 먼지 뒤집어 쓴 채 톱질 망치질하고 경찰 눈치보며, 온갖 서울거리 포스터 붙이러 다니는 일이 뭐가 좋다고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참 행복한 시절이었죠. 궂은 일이라곤 몰랐던 제가 그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형의 그 능란한 말솜씨와 후배들 앞서가는 부지런함 때문이었죠. '가진 자의 약점' 일깨운 형에게 감사 그러나 한편 형이 무척 못마땅하기도 했는데 그건 세상을 보는 형의 냉소적인 시선과 특유의 독설 때문이었죠. 제가 보기엔 치사해 보이는 일들을 형은 거침없이 해치우면서도 언제나 떳떳했죠. 특히 저처럼 ꡐ곱게 자란 귀공자ꡑ 타입을 싫어했고 약통을 올리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죠. 그런 태도는 가난했던 형의 처지에서 비롯되었거나 암울했던 유신시절을 견뎌내는 나름의 생존법이었을 거라는 추측을 한참 후에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땐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고 때로는 형을 증오했고 때로는 서러워 울기도 했죠. 어쩌면 제가 팔자에 없는 연극을 그토록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형에게 지기 싫었기 때문이고 지금 '가난한' 기록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도'가진 자의 약점'을 형이 콕콕 찔러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형은 졸업 후에도 연극도 꾸준히 했고 책도 몇 권씩 내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 왔죠. 최근에 바그너오페라에 대해 쓰신 형의 책을 읽으면서 여전한 부지런함과 박식함에는 정말 손발모두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요새 형에겐 옛날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삐딱함'이 잘 안 느껴지더군요. 나이가 들면 모가 깎이고 부드러워지는 게 정상이겠지만 형만은 계속 삐딱했으면 하는 저의 생각도 꽤나 삐딱해진 것 같습니다. 형과 난 30년 전 살던 세상을 바꾸어 살고 있는 걸까요? 혹은 색안경을 서로 바꿔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아직 철이 덜든 걸까요? 그냥 부질없는 공상일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전 지금 제 자신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물론 옛날처럼 단순하지도 못하고 영악하지도 못한 채 세상과 각을 세우며 사는 제 자신이 불편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휩쓸려 살지 않으려는 제가 대견스러울 때도 있다는 거죠. 그런 내 안엔 형의 영향도 한줄기 뿌리 깊게 박혀있고 그래서 형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쓰고 나서 읽어보니 거칠기 짝이 없고 괜히 형을 불편하게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이왕 썼으니 보내렵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신촌 허름한 술집에서 옛날처럼 한 잔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편지에 대한 형의 독설도 궁금하구요. 건강하십시오. 김동원(74.신방) 동문은 80년대 중반 한국에서 최초로 비제도권 다큐를 시작, 1988년 발표한 상계동 철거 이야기를 다룬 '상계동 올림픽'을 시작으로 17년간 기록영화 감독으로 우리사회의 음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을 해왔으며 10년 넘게 푸른 영상이란 단체를 이끌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벼랑에 선 도시빈민' '부산의 함성' '엄마, 아빠 할 수 있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1.2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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